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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48. 복효근 - 꽃잎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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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48. 꽃잎 - 복효근





어린 게의 집은 갯벌 어디쯤일까. 제집으로 알고 찾아든 어린 게를 바지락은 품는다. 삶의 조건은 급박하다. 냄비 속의 물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바지락은 누구를 만나러 가다가 냄비 속에 꼼짝 못하고 잡혀온 것일까.



국물이 뜨거워지자

입을 쩍 벌린 바지락 속살에

다시 옆으로 기어서 나올 것 같은

새끼손톱만한 어린 게가 묻혀있다



제집으로 알고 기어든 어린 게의 행방을 고자질하지 않으려

바지락은 마지막까지 입을 꼭 다물었겠지

뜨거운 국물이 제 입을 열어젖히려 하자

속살 더 깊이 어린 게를 품었을 거야

비릿한 양수 냄새 속으로 유영해 들어가려는

어린 게를 다독이며

꼭 다문 복화술로 자장가라도 불렀을라나

이쯤이면 좋겠어 한 소끔 꿈이라도 꿀래

어린 게의 잠투정이 잦아들자

지난 밤 바다의 사연을 다 읽어보라는 듯

바지락은 책 표지를 활짝 펼쳐 보인다

책갈피에 끼워놓은 꽃잎같이

앞발 하나 다치지 않은 어린 게의 홍조



바지락이 흘렸을 눈물 같은 것으로

한 대접 바다가 짜다

                       -복효근, 「꽃잎」, 전문.



  국물이 뜨거워질수록 바지락은 어린 게를 품느라고 입을 꽉 다물었다. 대접 속에 담겨진 바지락이 입을 쩍 벌린 순간 망설임 없이 드러난 속살, 거기에는 “다시 옆으로 기어서 나올 것 같은 어린 게”가 묻혀있다.



어머니 양수 속으로 잠입하려는 듯 칭얼댔을 어린 게. 그를 달랬을 자장가의 음색은 어떤 빛깔이었을지. 펄펄 끓는 국물에 몸을 맡긴 채 “속살 더 깊이 어린 게를 품었”다는 음색은 식물의 부름켜같이 투명해졌을지. 불가항력이란 말조차 낱낱이 해체해버렸을 음색이 문득 사늘하다. 삶의 비정적 질감을 더 짙게 하는 다감한 어조와 자장가의 음색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보편적이지 않은 바지락과 어린 게의 만남도 그렇다. 인접성이나 필연성이 없는데도 이들의 만남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한 소끔의 꿈”을 들키듯 “지난 밤 바다의 사연”을 책 표지처럼 활짝 펴 보인 속살에 “앞발 하나 다치지 않”은 꽃잎이 붉어진다. 바지락과 어린 게의 내밀한 만남이 보편성을 얻는 순간이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10












[2020-09-01 07:34:5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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