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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53. 장석남-그리운 시냇가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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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3.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시인




그리운 시냇가- 장석남



  시가 어려울 이유는 없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어려운 단어를 써야 할 이유도 없다. 누구나 쉽게 읽으라고 쓰는 것이 시이므로 세태에 간섭받음 없이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삶의 진정성에 다가서는 것이 시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삶이라는 불충분한 조건이 시의 갱신을 요구하는 시절일수록 시는 쉬워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새것의 강박에 못 벗어난 채 시의 앞뒤 맥락을 고의로 훼손한 작품들은 시의 훼절로까지 느껴진다.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한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 내려

마을을 환희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그리운 시냇가」, 전문.



  웃음이라는 단어가 아기 탄생의 비밀이다. 서로 다른 처지였을 두 사람이 만나 정서의 합일을 이루고 마침내 고귀한 생명을 얻는 과정을 ‘웃음’으로 보여준 언어감이 따뜻하다. 불과 세 개의 시행으로 아기를 얻었으니 시의 상상력이 대단하달 수밖에 없다.  

    


  돌멩이는 무엇을 뜻할까. 더구나 돌멩이아기가 꽃을 피우다니. 뭔가가 시의 행간을 가로막는 듯한 인상이 짙다. 인간의 웃음과 돌멩이 사이를 생략한 비약의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면 시는 볼썽사나운 말장난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막 태어난 아기는 지각이 없을 것이므로, 즉 아기의 무지를 돌멩이로 비유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돌멩이에서 꽃이 피는 것도 아기가 지각을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시의 입장이 분명해진다.

  아기가 “깊고 아득한 골짜기”로 올라간다. 거기는 아무도 이르지 못한 곳인데 어쩌면 갈수록 잃어버리는 우리의 먼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사는 거기로부터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 내려”라는 구절에 시상이 닿으면 문득 인간의 오늘이 당혹스럽다. 붉은 꽃잎이 “마을을 환희 적시리라”는 시의 미래, 물결에 떠오는 꽃잎을 보고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룰 것이라는 기대감은- 보편적 합리주의로 위장된 지독한 이기주의의 오늘이 아프다.

  이 시는 문명적 미래로 뿌리를 뻗을 것 같지 않다. 문명의 발전이라는 말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모두가 강요당하는 문명적 질서와 자본의 적폐를 거절하는 지점에서 시의 진짜 갱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시는 어렵지 않다. 좋은 시는 누구에게든 정답고 맑고 따뜻하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97








[2020-10-13 07:26:5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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