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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한 닢
작성자 : 이병초 


동전 한 닢(외 1편)
이병초


뭐 애닯지는 않다
소주로 간암을 캐내고 싶었던 밤들이
조금 가까울 뿐이다
녀석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새벽이면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눈을 크게 뜨면
모로 누워 잠든 내 몸을 만나곤 했다
가슴에 비수를 품을 수 없다면
독을 품어야 한다고
성욕처럼 핥아대던 말을 못 벗고
아깐 목숨 빼앗길세라
벽 쪽에 허리를 더 오그리는
내 몸이 안쓰럽기도 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때가 되면 내 몸도 삼베옷 입고
입술에 동전 한 닢 물려
뒤 없는 청산에 새 살림날 터이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궂은 일만 있지 않았던 이 세상
병명 따위가 서럽겠냐만,
내 시간을 외등처럼 켜놨을 옴팡집
목숨을 시켜도 이 빠진 접시에 담아올 옴팡집에서
소주잔에 비친 거미줄을 빨아들이듯
너랑 찐하게
동전 한 닢 지우고 싶다


장대비


염소 떼 몰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녀를 못 만나고
산동네 빠져나오는 길  
살래살래 빗방울 뿌려지더니
장대비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여기가 어딘데 찾아왔냐고 족치듯
대번에 좌악좍 쏟아지는 장대비
맘먹고 길을 찾아보기는커녕
맘 놓고 길을 잃어본 적도 없다고
악쓰듯 퍼붓는 장대비
순식간에 불어난 도랑물이
콸콸콸 논밭을 덮친다
그녀도 염소 떼도 잊어먹고
옥수숫대처럼 쫄딱 젖어
악 받치는 장대비
목이 꽉 쉬었다
                                  -『현대시학』, 2020년, 9,10월호.

[2020-10-17 06:16:4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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