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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54. 박노해-지문을 부른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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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4. 지문을 부른다 - 박노해 시인




지문을 부른다 - 박노해



서정시의 영역은 광범위해서 그 폭과 깊이를 잴 수 없다. 삶에 밀착된 자연물로부터 죽음 이후까지를 들먹이는 시적 징후들은 사유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여기에 노동시도 한손 거든다.


1984년에 출간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경악에 가까운 노동의 실상이 어떤 서정의 꽃으로 피어났는지를 보여준다.




진눈깨비 속을

웅크려 헤쳐 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 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 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 지가

어언 육 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뜻도 없이 죽음처럼 노동 속에 흘러

한 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임석경찰은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 봐

  -박노해, 「지문을 부른다」, 부분.



    
시집이 출간되기 이전에 형상화되었을 시의 현실이 절박하다. 동회에 가서 주민등록 경신을 하려면 지문을 찍어야 하는데 시에 등장한 이들은 손가락에 도장밥을 묻히고 지문을 찍어도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

긴 시간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자랑스러운 손, 그런데 지문이 없다.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라고 적힌 시 구절이 눈에 시리다. 선명하게 찍혀야 할 지문이 선명하게 없다는 사실 앞에 허탈감이라는 말은 무색하다. 지문은 어디로 종적을 감췄을까. 지문이 지워질 때 인간의 존재감도 지워진 게 아닐까. 지문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임석경찰이 화를 내도 지문은 찍히지 않는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자본가를 더 기름지게 해주는 도구는 기득권 세력의 이분법이라고 목이 쉬어도 노동 현실은 달라질 게 없어 보인다.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쯤으로 여겼을 악조건 속에서도 꿈은 영근다. 남들이 일할 때 나도 일하고 남들이 쉴 때 나도 쉬는, 함부로 무시당하지 않고 멸시받지 않는 평등 세상을 노동 현실이 깨쳐 준 것이다.


짧게 쳐간 시행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시의 여백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평생 노동자로 잔뼈가 굵은 분들이 지문만 잃어버렸겠냐고 말문을 트는 것 같다. 근대를 더 근대답게, 문명을 더 눈부시게 만들고 있는 당사자들이 이것들에 되레 소외당하는 기막힌 현실이 시의 여백에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체험과 상상을 토대로 빚어진 시 한 편이 2020년 10월 지금의 노동 현실을 짚어보도록 유도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꿈을 “없어진 지문을 부르는 것”으로 대신한 시의 정신이 순수하다. 그의 꿈은 개인의 꿈이자 당대 노동자의 집단적인 그리움으로 읽힌다. 시에 적힌 꿈이 현실에서 이뤄질 가망이 없더라도 박노해의 노동시가 더 선명하게 서정시의 외연을 확장하기를 기대한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62









[2020-10-20 00:45:5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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