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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55. 박형권-장자도 수조기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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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5. 장자도 수조기 - 박형권



장자도 수조기 - 박형권


섬사람들의 노을이 되고 싶어서 오는 수조기가 있다. 해가 서쪽 하늘로 뉘엿뉘엿 잠기는가 싶더니 제 몸속에 가둔 피를 온통 풀어 붉게 타는 저녁놀, 그 역할을 맡고 싶은 생선이 수조기이다. 시의 언술이 빛나는 것은 비유의 촉을 놓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

  

아직도 가덕 장자도 바다에

수조기가 오고 있다

서해바다의 참조기나 굴비가 되는

그 역사적 숙명은 아니더라도

가덕 바다의 작은 역사는

수조기로 하여 저녁밥상이 비굴하지 않았다

가덕 봉수대에 불이 꺼지고

가덕 진성의 망루가 허물어진 이후에도

밥때마다 저녁놀이 찾아오는 것처럼

수조기도 섬사람들의 노을이고 싶어 했다

천 번을 죽어도 굴비가 되지 못하는

섬사람들의 밥상에 마주앉기 위하여

여덟 물때의 급한 조류를 타고

아직도 수조기가 오고 있다

돈 꽤나 가진 이들이 참조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을 때

귀양 온 조상을 공통으로 가진 수조기들은

스스로 몸을 던져

밥때를 기다리는 식구들 앞에서 굴비인양 죽었다

세상에 난 것, 의미 없는 것 없나니

-박형권, 「장자도 수조기」, 부분.



장자도 바다에서 잡히는 수조기. 굴비나 참조기처럼 대접은 못 받아도 나락이 패기 시작할 때면 다가와서 섬사람들의 생선찌개 깜이 된다. 봉수대며 망루라는 단어가 폐기되다시피 한 지경인데도 “여덟 물때의 급한 조류를 타고” 변함없이 수조기는 온다.

부서라고 알려진 생선이 수조기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래선지 시에 수조기의 생김생김이며 맛이 적히지 않았다. 사람 입맛에 닿는 수조기를 형상화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산섬 근처일 “가덕 바다의 작은 역사”에 렌즈를 들이민 시의 욕망이 찬찬하다. 갯가에 사는 이들의 생선찌개 깜이 되어 “저녁밥상이 비굴하지 않았”어도 귀한 어종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수조기.

잘나고 똑똑하고 부자인 이보다 그러지 못한 이가 더 많은 게 인간사이다. 하늘님도 더러 고개를 돌릴 법한 인간사에는 수조기 같은 이들이 참 많다. 자신이 겪고 있는 오늘이 꿈이기를 바라는 사람일수록,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일 그 꿈에서 어서 깨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일수록 수조기가 함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고단한 행로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아예 모를 수도 있겠다.

인간사의 보편적 정서가 왜 슬픔과 더 친한지 장자도 바다는 알고 있을 법하다.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호사 따위에 길들여지기보다 슬픔을 더 껴입는 사람들. 이렇게 어진 이들의 “작은 역사”를 위로하듯 “이 세상에 난 것, 의미 없는 것 없나니”라고 오늘도 붉게 타는 저녁놀이 눈에 아프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81














[2020-10-30 21:35:3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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