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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56. 박용래-구절초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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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6. 구절초 - 박용래



구절초 - 박용래


1925년 충남 논산군 강경읍에서 태어난 박용래 시인. 평생을 눈물과 술과 시를 껴안고 살았던 사나이. 묵객(墨客)들은 그를 “눈물의 시인”이라고 적었다.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이 그에겐 눈물의 대상이었는지도 몰랐다. 어떤 때는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는 그의 속내를 여기서 짚기엔 무리가 있다. 붓끝을 벼리던 묵객들이 그를 대인(大人)으로 대했다는 점을 우선 밝힌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빅용래, 「구절초」, 전문.



자연물 한 개가 그리움에 겹쳐져 또렷한 형상을 짓는 것은 서정시의 오랜 습성이다. 구절초에 투영된 ‘누이’의 모습이 아련하다. 곱디고운 손길이며 머릿결이며 단아했을 옷매무새가 당장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 같다.

누이가 구절초를 좋아했는지, 구절초가 필 때 부소산 기슭에서 누이와 이별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시에 적힌 누이가 해산 후유증으로 목숨을 달리했다는 시인의 누님일 수도 있겠지만 시의 상상력은 여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절초에 ‘누이’가 닿자마자 시의 상상력은 독자의 기억 속에 간직된 이름을 불러내도록 작동된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라는 것을 확인하듯 저절로 느껴지는 그 사람의 숨결이 시의 행간에서 새로운 영상으로 직조된다.


누이를 호명하듯 구절초와의 소회를 쳐가는 시행이 정답다. 이 시가 발표된 1975년 당시나 그 이전에는 여학생들이 구절초를 ‘마아가렛’이라고 불렀던가보다. 구절초를 단추 구멍에 달기도 했고 머리핀 대신 꽂기도 했다는 예쁜 시절을 지나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 스러진 자리에” 이르면 시상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AI가 사람의 취향까지 범하는 시절에 여우가 울고 도깨비불이 스러지는 토속성이라니.

가을이 깊어질수록 당신은 구절초 ‘매디매디’에 더 또렷해질 것이다. 풀어진 운동화 끈을 꼭 매어주고 가만히 웃던 당신. 눈물로 놔주고, 기억 속에서 다시 눈물로 만나는 홀로 된 사랑일수록 구절초 꽃잎에 오래오래 머물 당신.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04









[2020-11-02 12:57:5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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