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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맑은시비평57. 전홍준-둠벙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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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57. 둠벙 - 전홍준



둠벙 - 전홍준


갯비린내와 파도소리에 감기는 안면도. 시집 『눈길』에 표면화된 섬사람들의 삶은 불편하고 서늘하다. 그러나 전홍준의 시에 녹아든 삶의 행위는 “뜨거움의 손 시림”(「겨울」)처럼 혹한을 견딘 한 개인의 생애도 역사일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의 시집 『눈길』에 수록된 시편들 속에는 자연인이 견디어 온 시간의 내력이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다.



물 빠진 바다가 우물 하나 파 놓았다

종일 조개를 파고 돌아올 때

몸에 묻은 뻘 물 밑에 가라앉히고

간 들인 몸도 함께 가라앉아

따로 물을 쓰지 않았다

씻고 빨고 닦아야 하는 것들을

사람들은 항상 이곳에 내맡기기도 했고

바다로 나갔다 삼동네 마을 아낙들이 겨울바람에 뒤집혀

줄초상 났을 때도 바다로 생을 번 신발이

이 둠벙 속으로 떠밀려 와서

몸 대신 가라앉기도 했다

-「둠벙」, 전문



섬사람들이 종일 조개를 캐고 집에 돌아가면서 몸과 도구를 씻는 곳이 둠벙이다. 화자는 둠벙 물에 몸을 씻기 전에 “파 놓고, 파고, 돌아오고, 가라앉히”는 행위를 먼저 보여준다. 둠벙에 “씻고 빨고 닦아야 하는 것들을” 내맡기며, 소금기 밴 몸을 이끌고 둠벙 속에 들어가기도 하며 하루치의 노동을 정히 갈무리한다.


둠벙은 고맙거나 정답지만은 않다. 어느 겨울 세찬 바람에 배가 뒤집혀 삼동네 아낙들이 줄초상이 났을 때 “바다로 생을 번 신발이” 떠밀려 와서 “몸 대신 가라앉”았던 비극적인 곳이므로 그렇다. 둠벙은 비통한 기억을 물고 있는 장소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둠벙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섬사람들에게 원(怨)을 심어 주려고 둠벙이란 우물을 팠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둠벙은 삶과 죽음의 기억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됨과 동시에 누구든 자신의 가슴 속에 둠벙 한 개씩은 파놓고 산다는 의미로 확장된다.


섬사람들에게 간직된, “바다로 생을 번 신발이” 둠벙에 몸 대신 가라앉는다는 한(恨)의 정서는 오래오래 서늘하다. 한(恨)은 원망의 응결체가 아니라 삶의 비극성까지를 긍정적으로 품어주는 웅숭깊은 지혜의 정서다. 원통절통한 사연에 얽매여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게 원(怨)이라면, 뼈마디가 녹아들 법한 개인의 불행을 위로해주고 삭혀주는 윤리적 조절장치이자 삶을 살도록 북돋워주는 정서가 한(恨)의 미학이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23


















[2020-11-10 14:28:0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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