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이병초 맑은시비평60. 김종길-성탄제
작성자 : 김경운 
파일1 : 1.png (486.9 KB)
파일2 : 1_2.png (167.8 KB)







<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60. 성탄제 - 김종길



성탄제 - 김종길


제목이 성탄제이고 계절은 겨울이니 이 시에 등장하는 성인은 예수님이겠다. 당신은 유럽 분인데 시의 어디에도 서양의 색채가 묻어 있지 않다. 어두운 방이며, 숯불, 산수유, 늙으신 할머니 등의 한국적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거리에는,
이제 소리 없이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인가.

-김종길, 「성탄제」, 전문.



눈 내리는 밤에 이 시는 착상되었을 것이다. 열병을 앓았던 유년기의 겨울, 어두운 방안엔 숯불이 피어져 있고 할머니가 그의 목숨을 지키고 계신다. 눈밭을 파헤치고 따온 붉은 산수유를 약으로 가져온 아버지, 그는 당신의 옷자락에 볼을 문지르며 자신을 “한 마리 어린 짐생”으로 표현할 만큼 병약했다.



열병을 앓던 그 밤이 크리스마스였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회상한다. 성탄제로 번역된 크리스마스, 서구 정신의 축으로 상징되는 예수님 이미지에 한국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이 닿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그의 마음에 든 스산함이 감지된다. 어디를 둘러봐도 “옛것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길 없”는 도시. 문명의 의붓자식임을 뽐내는 휘황한 불빛과 남의 눈길을 끌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 반짝이는 트리들. 웅장하게 지어진 교회들과 경쾌한 캐럴송과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주고받는 선물치레 속에는 예수님이 계실 것 같지 않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낮추었고 스스로 험한 곳에 가서 사랑을 실천한 당신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열병 앓는 자식을 치료하기 위해 눈밭을 파헤치고 산수유를 따온 아버지. 잘난 것도 없고 부자도 아닌, 그러나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밑바닥 생활을 감수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예수님과 닮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서구의 이미지를 한국의 정서로 접목해낸 그 밤에 펑펑펑 쏟아졌을, 함박눈을 기다린다. / 이병초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80
  









[2020-12-04 16:23:13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