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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의 타박타박> 여는 글 : 산책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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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의 타박타박> 여는 글 : 산책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눈 감으면 훤하게 보이는데 눈을 뜨면 거기가 거기 같아서 내 유년의 기억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오늘로 나흘째다. 어제와 또 달라진 냇가랑 길을 또 걷는다. 대아댐이 만들어진 후부터 만경강 상류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한갓 냇가에 불과해졌다. 동네를 비워놓고 너도나도 천렵했던 자리는 마그네다리를 지나쳐 있던가. 사금파리를 납작한 돌 위에 올려놓고 빻아서 가루를 내고, 늙은 쑥은 뜯어서 짓이겨 개떡을 만들며 소꿉놀이 하던 곳은 대체 어디란 말이냐.

나는 엄마 역을 도맡아 했었다. 이 애늙은이를 동네 친구들은 단박에 알아봤던 것이다. 키 작고 얼굴이 허연 ‘성애’는 아기 역할에 걸맞은 목소리를 가졌다. 내 등에 매달려서 칭얼댔다. 밥하느라 바쁘다고 짜증을 내면 우는 시늉도 잘 냈다. 저기 늙은 개밥나무(갯버들)는 몸이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지난 여름 한물에 저리 무너졌으리... 개밥이라고 불렸던 그 열매는 우리의 여름 한철 일용할 샛밥이었다.

양전마을을 뒤로한 저 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제방이 주욱 이어졌었다. 내 친구들은 웬만하면 그곳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물이 깊은데다가 동네에서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곳에 가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준비물로 진흙이 필요했다. 진흙이 거기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을 오빠들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전주에서 전근 오신 선생님은 보통 멋쟁이가 아니었다. 예쁜 옷과 뾰족한 구두, 내 옆을 지날 때 나던 분 냄새는 야릇했다. 나는 육성회비를 제때에 내 본 기억이 없다. 물감은 커녕 도화지조차 살 돈이 없는 형편의 나를, 뙤약볕에 숯검댕이가 된 내 얼굴을 나는 거울 앞에서 한심하게 쳐다봤었다. 찰흙을 가져 오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고대했다. 그까짓 정도는 무일푼으로 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는 물속에 들어갈 수 없는 시기에도 불구하고 진흙을 캐러 간 적도 있었다. 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진저리를 쳐 가면서 고무신에 진흙을 채워 뭍으로 나르고 또 날랐다. 한 번 다녀올 때마다 양손 가득 담겼던 것은 느닷없이 찰흙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기 위한 비축용이기도 했지만, 혼자 집지키며 심심할 때 훌륭한 놀잇감이 되었던 것이다.

말라 터진 진흙에 물을 부어 주물러서 기린과 사슴을 만들었다.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의 뱀은 차라리 똥이라고 해야 옳았다. 아! 그리고 나를 슬프게 했던 기억이 둥둥 떠오른다. 먹고 살 만했던 집 아이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비닐에 싸인 찰흙을 사가지고 와서 나와 친구들을 머쓱하게 했던 것이다.


봉동읍에 들어와 산 지 이십 년이 되어간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향에 왔지만 온갖 문명과 기술로 번쩍번쩍한 21세기에 나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를 만나 생애 최고의 불안에 휩싸여 있다.

열이 오를 대로 올라 눈이 뒤집히던, 방바닥 네 귀퉁이를 쥐어뜯으며 기어 다녔던, 내가 경험했던 홍역과는 사뭇 다르다. 엄마는 장사하러 나가셔서 사흘째 돌아오지 않고, 이웃집 할머니 덕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

두려움에 떨 시간이 없었다. 모르고 당한 일이었다. 약도 별로 없었고 민간요법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무사했는데 나는 오늘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누군가의 표현에 일조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를 견뎌낼 구멍은 있을까.



2019년에 연재했던 <이현옥의 책과 영화>에서의 “나는 한국현대사 누님”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부담이 있다. 십여 년 전에 유년의 희로애락을 아카이빙 하겠다고 끄적거려 놓았던 노트를 찾은 것은 행운이다.

엉킨 실타래가 드디어 풀어지리라. 이제 나는 마그네다리 아래 냇가를 자주 거닐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여기가 거기인지 저기가 여긴지 가깝고도 먼 옛 그림을 타박타박 걷다보면 찾게 될 것이다.

다시 불러준 전북포스트에 감사드린다. / 이현옥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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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72






[2021-01-26 07:31:3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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