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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3. 정월대보름이 제일 좋아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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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월대보름이 제일 좋아 <이현옥의 타박타박>


초등학교 저학년이 지나고부터 나는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막내고모는 물론 그 위 고모들조차 우리 오남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낌새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친정나들이 오는 명절 3~4일 동안 어머니는 할머니 댁에서 거의 부엌데기나 다름없었다. 작은어머니들은 건성건성 할머니 댁을 오가며 일을 거드는 것에 비해 내 어머니는 유독 고생이 심했다.

뼈 빠지게 일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맏며느리의 노동을 지켜보던 나는 제사조차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할머니 댁에 가지 않아도 되는 정월대보름이 갈수록 좋아졌다.

비록 풍요로운 음식이 없을지라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우리끼리 오붓이 지낼 수 있다는 묘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오빠들은 이른 아침부터 지게와 포대 자루를 챙겨서 앞산으로 땔감을 찾아 나섰다. 종종 나도 그들을 따라 다녔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 협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발길 닿을 만한 곳에는 이미 나뭇가지는 물론 불쏘시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오빠들은 이 일을 빨리 마치고 연을 점검하여 연날리기를 하러 가야 한다. 내 건너 순절리에 사는 아이들과 연싸움에서 이겨야만 했다. 자기들 산이라면서 나무하러 가는 길을 막으며 얼마나 훼방을 놓았느냐 말이다. 그 애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어야만 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자 한 뙈기 밭 건너에 있는 ‘새터’에 사는 아이들이 우르르 집 쪽으로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 아궁이 앞에서 납작 엎드려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두런대는 발자국 소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며 참았던 재채기를 터트렸다. 돌멩이 서너 개가 부엌 앞 토방에 툭툭 떨어졌다.

이번에도 나는 속았다. ‘비겁한 놈들 오늘 저녁 패싸움에서 또 질 것들이...’ 녀석들은 돌멩이로 전의를 다짐하는 것이리라.

만경강의 상류 냇가랑에 갈 때나 순절리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갈 때 최고의 지름길 길목에 있는 우리 집. 외딴집인데다 지금 나 혼자이므로 조심해야 했다.

밤늦게 오빠들이 돌아오면 다 일러바칠 것이다. “새터 애들이 우리 집에 돌을 던졌다.” 그러면 내일 당장 앞산에 나무하러 갈 때 한참을 돌아가야 할 것이다. 동네 오빠들까지 가세하여 길목에서 눈을 부라리며 지키고 있을 것이므로...

생솔가지에 얼른 불이 붙지 않는다. 군불을 지피느라 내 얼굴은 온통 눈물콧물 범벅이 되었다. 솥단지에 물을 가득 붓고 아궁이 깊숙이 아껴놓은 내 허벅지만한 나무에 불을 붙여놔야 나도 한디 마당으로 놀러갈 수 있다.

방구들을 덥혀 놔야 어머니에게 야단맞지 않는다. 수요예배에 가시면서 어머니는 당부를 하셨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쥐불을 놓다가 남자애들은 또 패싸움을 벌일 것이다.

오빠들은 어제 저녁에 깡통에 잔구멍들을 뚫어 철사를 끼우고 그 안에다 토막 낸 나무와 작은 돌멩이까지 단단히 준비해 놓았다. 조금 전에 찰밥을 배불리 먹고 뚝방 아래로 나갔다. 마치 냇가 공터가 자기네들 것인 양 진지를 구축해 놓았을 것이다.

달은 둥둥 떠오르고 쥐불은 번져가고 불깡통을 돌리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하면 구경 나섰던 우리 여자애들은 전선에서 후퇴했다. 그곳에 어영부영 있다가는 다치기 십상이므로 한디 마당으로 돌아와 ‘오재미놀이, 고무줄뛰기, 팔방놀이, 술래잡기’ 등을 하며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언니들은 우리처럼 나대며 뛰어 놀지 않았다. 대신 집집마다 채반을 들고 오곡밥과 찐 찰밥, 온갖 보름나물들을 얻어왔다. 그리고 소여물 끓이느라 뜨끈뜨끈해진 덕순이 언니네 아랫방에 모여 히히덕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실컷 뛰어 놀다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집으로 돌아와 웃방에 차곡차곡 모아 놓은 찰밥을 먹고 다시 한 번 놀러 나갔다. 노느라고 정신이 팔린 동생과 친구들에게도 찰밥을 한 덩이 떼어다가 주었다. 정월대보름은 이렇듯 나눠먹는 날이었다.

아, 이 시기가 지나면 곧 배곯는 시절이 돌아오리라. 생강과 파, 무와 배추, 밀과 목화 등 밭농사를 짓는 부모가 대부분인 우리 동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저 차진 음식을 많이많이 먹어서 골을 채우고 다가올 봄바람에 맞서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 여름 더위를 견뎌야 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껴놓은 찹쌀을 꺼내어 밥을 짓고, 말린 나물들을 불리고 삶아 들깨를 갈아 붓고 된장을 풀어 들기름으로 자글자글 볶아서 우리들의 허기를 달래 주었으리라.

평등한 달빛 아래 오늘처럼 시름없는 날이 또 있을까. 밤늦게 들어와 찰밥 한 덩이를 입에 몰아넣고 이부자리에 들었다.

막 잠이 들려는 찰라 ‘새터’마을 애들이 패싸움에서 또 졌는지 발을 쿵쿵 구르며 우리 집 흙담 옆을 지나간다. 작전에 실패했다는 둥 재기를 불태우겠다는 둥 웅성웅성 두세두세 지나갔다. / 이현옥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22









[2021-03-02 22:39:05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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