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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10-2. 밭 가운데 외딴 집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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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밭 가운데 외딴 집 <이현옥의 타박타박>


오늘 새벽녘에도 미친 듯 비가 쏟아졌다. 아침밥을 먹는 동안 내 마음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뚝방에 나가 물 구경을 하고 싶어서다. 대아 댐이 물을 가둬놓고 있더라도 이런 한물은 봐 줘야 한다.

평소에는 폭이 좁은 냇가랑에 불과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흙탕물이 장난 아닐 것이다. 어쩌면 뚝방 아래 자전거도로도 일부 잠겼을 확률이 높다. 아침이 바쁘다면 퇴근 후 차를 타고서라도 빙 둘러봐야겠다.

여기저기 물난리로 시끌벅적하기는 하지만, 물 구경은 나의 오래된 습관인지라 지금도 몸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축축한 여름이면 방 구석구석에서 온갖 벌레들이 기어 나와 몸을 간지럽히거나,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파리 모기쯤이야 느려터진 거미쯤이야 얼마든지 감당할 만했다. 입 가장자리가 오톨도톨 불키고 있는 중이면 밤사이 그리마(=돈벌레)가 얼굴에 오줌을 싸고 갔다는 흔적이었다.

사내기들이 천정에서 툭툭 떨어져 자신의 몸을 동글게 말고 있는 모습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빗자루로 쓸어 모을 때 그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했느냐 말이다. 썩기 시작한 나무를 들출 때에는 살짝 들어 올리고 낌새를 살펴야 했다. 서너 마리의 지네가 우르르 기어나와서 놀라 자빠진 적도 있었으므로 미리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곡식 가마니를 구멍 내고 있던 쥐의 눈과 딱 마주치기도 했었다. 뒤 안의 큰 앵두나무를 기어오르는 구렁이를 본 이후 제아무리 배고플지언정 입 안 가득 침이 고일지언정 한동안 나는 앵두를 먹지 못했다.

이렇듯 나는 장마철은 물론 한겨울도 싫어했다. 지긋지긋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물 나고, 벽에서는 흙이 떨어져 내렸다.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마루를 거쳐 방으로 들어가다가 김치와 동치미 그릇, 수저들이 상 위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다 바닥에 달싹 엎지른 적도 있다. 물기가 남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그 쇠붙이 고리에 쩍쩍 들어붙었다.

걸레로 마루를 닦는 도중 바닥은 그새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땔감이 부족하여 생솔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매운 연기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곤 했었다. 한시라도 빨리 나는 이 외딴 집에서 탈주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라는 책은 몇몇 공공건축물의 공간속에서 집단이 가해한 쓰라린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나는 『나의 집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로 해석하여 읽었다.

다행히 저자는 서문에서 “개인의 슬픔, 아픔, 고통, 비극은 사회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공동체적이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개인도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나아가, 그 사회가 속한 더 큰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코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이 아니라는 답변을 내려주었다.

때때로 나는 자신이 처한 고통의 언저리를 허우적대면서 겨우 이 정도에 지나지 않은가. 자책하는 사람이었다. 한동안 침잠 속에 머무른 적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비극조차도 사회적 산물로서 그 영향 아래 있다는 말에 상당히 고무되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다독여 주다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 집이 그렇듯 끔찍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랫목은 따뜻해서 참 좋았다. 자고 일어나면 윗목의 걸레가 얼어 있을 정도로 외풍이 심했지만, 한 이불 아래 굼실굼실 모여 자던 그때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가.

몸이 노긋노긋 데워질 무렵 부엌일 끝낸 어머니는 차가운 물속에서 방금 꺼낸 손으로 우리들의 발에 간지럼을 태우며 웃음바다를 만들고는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통해 나는 ‘어머니가 우리를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차갑고 거친 살갗의 촉감을 통해, 낮 동안 우리 집을 에워싸고 벌어졌던 크고 작은 변화무쌍한 풍경들, 시기와 질투, 멸시, 주린 배를 채우느라고 벌어졌던 온갖 전투들을 잊을 수 있었다.

눈 내리는 겨울 저녁 초가지붕을 덮어줬던 하얀 눈은 내 심장을 지그시 눌러주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거니와 얼룩덜룩한 목화 이불 위에 눈으로 만든 이불이 한 장 더 얹어져 평온한 심정이 되었다.

그 아랫목에서 눈알을 말똥거리며 나는 무엇을 바라고 그리워했던가, 내가 내뱉은 허연 입김과, 등잔불 그을음이 흐느적흐느적 천정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별의별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몇 채의 집을 지었다가 부쉈다. 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댕기를 늘어뜨리고 맛있는 음식을 배터지도록 먹었다. 착한 흥보집에 제비가 물어다줬던 박씨를 이 가난한 외딴 집에도 갖다 준다면, 그리하여 하루아침에 내 운명이 확 뒤집어지는 장면을 그리고 또 그려봤다.

레퍼토리는 자주 바뀌었더라도, 주제는 거의 한결 같았다.

기름 닳는다고 어머니께서 등잔불을 훅 불어 껐을 때 나의 동화는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한 번 달아난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달빛이 만들어준 처마 그림자가 문살에 깊이 내려올 때까지 나는 동생과 어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었다.

“오~~~으--” 저 멀리 늑대의 울음소리, 볏짚으로 덮어 놓은 생강 밭 위를 짐승(살쾡이? 족제비?)들이 스스슥 달려가는 소리에 한기를 느끼며 자다 깨다 몸을 뒤척였다.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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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806











[2021-08-03 11:04:46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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