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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의 아내 마지막 출근길ᆢ 이병초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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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의 아내 마지막 출근길···가난한 시인은 눈물을 적셔 편지를 썼다
박용근 기자


이병초 시인(58)이 아내 이현옥씨(61)에게 쓴 편지를 11일 경향신문에 보내왔다. 도서관 사서로 일해 온 아내의 마지막 출근하는 뒷 모습을 지켜보며 적은 ‘시같은’ 편지다. 그는 편지에서 35년간 살아오는 동안 하지 못했던 회환과 감사, 약속을 절절하게 담아냈다. 이 시인은 1998년 <시안>으로 등단했고, 시집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등을 냈다. 최근에 시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를 펴냈다.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전북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사랑하는 당신.

오늘 새벽에도 당신은 내가 걷어찬 이불을 배에 당겨준 뒤 창문을 닫았습니다. 새벽 공기가 감기라도 물고 올까봐 염려하는 것이지요. 당신은 지금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쥐뿔도 가진 게 없는 연하의 남편, 시를 수백 편 써놨다지만 어떤 출판사에서도 시집을 내주지 않는 시인 지망생을 당신은 신랑으로 맞이했습니다. 시에 전력하거나 집안일을 거들기는 커녕 친구들과 노는 데 더 정신이 팔려 있는 철딱서니 없는 사람을 당신은 따뜻하게 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딸과 아들을 낳았고 매일 도서관에 출근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당신 몰래 빚보증을 섰고 간신히 마련한 아파트에서 쫓겨날 지경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천하태평이었습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최고장’이라는 것이 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나 봅니다. 학원가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근근이 생활비를 보태던 남편은 전주를 떠나 서울에서 급여를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신 일은 더 늘어났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된 딸과 아들의 등하교까지 도맡았고, 친정어머니를 모셔야 했으며, IMF로 부도난 오빠를 신경 써야 했습니다. 더구나 당신은 가난한 집안의 장손며느리여서 서울에 가 있는 신랑 대신에 시부모 생신이며 제사 때를 놓쳐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궁색한 티 없이 도서관에 출근했고 퇴근 후에는 집 안팎의 일에 시달렸으며 그러면서도 신랑을 대학원까지 보냈습니다.

당신은 소주를 먹다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살려고 그 고생을 했던 것이냐고 신랑의 목을 붙잡고 서러워했습니다. 가난한 집 딸로 컸으므로 당신은 농사일을 모르는 게 없었습니다. 토마토가 자라는 뜨거운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가 순을 따주는 일로부터 새벽 2시에 일어나 누에치는 집에 가서 뽕잎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학비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한 당신, 끝끝내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작가가 되었거나 강단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할 줄 알았던 당신이 무명 시인의 아내이자 도서관 사서로 늙어갈 줄은 몰랐다고 남편 가슴에 안겨 펑펑 눈물을 쏟곤 했습니다.

돌아보니 아득합니다. 당신보다 더 혹독하게 세월을 버틴 분들이 많고 당신 삶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 사람의 내력도 역사와 같아서 삶의 굽이에 박힌 옹이는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아파트가 싫어서 주택으로 이사 온 당신, 옥상 화분에 심은 제라늄과 채송화를 아끼고 그 옆에 고추와 파를 살피는 당신. 뭐든 때려 치는 게 특기인 남편이 운 좋게 학교로 갔지만 10년도 못 채우고 해직교수가 되었을 때도 묵묵하던 당신.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출근일입니다. 무려 35년, 비바람과 눈보라와 삶의 허망감을 마음속 허청에 쟁이며 당신은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던 것입니다. 남편의 마음 한쪽이 먹먹합니다. 급여를 못 갖다 주는 남편의 초라한 입장이 더 마음 아팠을 당신의 의리 앞에 할 말을 잃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편이 당신 뒷바라지를 도맡을 것입니다. 복직이 되었어도 여전히 속은 시끄럽지만 당신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힘껏 도울 것이며, 당신이 가고 싶은 곳에서 몸종이 되는 것은 물론 “당신이 있어 나는 이렇게 말할 사람이라도 있지만 쓸개간장이 녹아내려도 말할 곳조차 없는 이들은 어떻게 살까요.”라면서 눈물 글썽이던- 당신의 몸에 간직된 진정성과 순결성을 존중하고 지킬 것입니다. 당신과 한 약속을 거의 지키지 못한 순 엉터리 고물딱지 같은 신랑이지만 이번만큼은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이현옥, 당신을 사랑합니다.

2021년 8월 당신의 草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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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8111619001?utm_source=kakaotalk&utm_medium=social_share#c2b













[2021-08-11 20:15:1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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