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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작성자 : 이병초 


가만히
이병초



어스름 깔리는 시냇가에 앉아
내 귓속 파먹는 새소리에
성냥불 켜주며 잠시
환해졌다가 캄캄해지는 순간을 즐겼다  
물병아리 두엇이 시냇물 속에
고개 처박을 때마다 이는 잔물결
동그랗게 눈 뜨는 잔물결을
밤의 여객선이 찍어내는 판화라고 믿었던 날은
얼마나 멀리 가버렸나를 생각하며
옻닭 국물처럼 구수한
동무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고이 접히지도 않고
돌돌돌 펴지지도 않는 어제를 매달고
망명객처럼 떠돌았어도  
시간의 눈금을 지우기는커녕
소금 한 됫박 못 얻고
바람 속에서 잠을 청했던 이십여 년이
누구의 꿈속은 아니었을까……
물결이 반짝일수록
더 맑아지는 새소리
머릿속을 일직선으로 빠져나가는 새소리에
성냥불 켜주며
몸을 가만히 기댔다
                      -『시산맥』, 2021년 가을호.

[2021-08-17 07:30:3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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