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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民畵 6 단수수 잔치
작성자 : 鄭洋  (홈페이지)


단수수 잔치

아이들은 깊은 밤 끼리끼리 모여
집집마다 울타리 언저리에 심은 단수수를
몰래 조금씩 표 안 나게 베어다가
캄캄한 뒷동산에 가서 두근거리며
이가 시리도록 씹어 뱉곤 했다

산자락 끝 아편쟁이 윤생원네 콩밭에는
사람들 몰래 앵속을 가꾼다
드문드문 자라는 그 앵속 눈가림하느라
수수 씨를 앵속 주변에
더 촘촘히 뿌려놓아서 콩밭이
콩밭인지 수수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수수와 단수수는 겉모습이 똑같지만
수수는 이삭 패기 전부터 줄기며 잎에
호랑이피 먹은 붉은 금들을 긋는다
윤생원네 콩밭 수숫대들은 이삭 패고도
호랑이피 그 붉은 금들이 없다는 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맘먹고 단수수 씨들을 뿌린 건지
깝박 잊고 단수수 씨들을 뿌린 건지
그 속이야 윤생원만 알 노릇이지만
모가지 잘라낸 콩밭의 단수수들을
윤생원이 몇 차례나 손수레로 옮겨
은행나무 밑에 겹졉이 쌓아두고
자나깨나 단수수 고픈 아이들에게
몇 움큼씩 나눠주었다. 한 번 받온 아이가
거듭 받으러 와도 윤갱원은
그런 걸 굳이 가리려 하지 않았다

콩밭 단수수는 그 사각거리는 맛이
집 단수수보다 몇 배나 달았다
아이들이 맘놓고 단수수를 씹어 뱉는
품 넓은 은행나무 그늘 아래
두서너 어른도 아이들 틈에서
단수수를 씹으며 염치없는 헛웃음을 뱉았고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왕개미떼들이
죽자살자 단수수 뱉은 더미에 엉겨
아이들과 어울려 잔치를 즐긴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낄낄거리면서도
콩밭 단수수를 미리 알아채지 못한 걸
큰 손해라도 본 것처럼 억울해 했다

   *앵속[罌粟] = 양귀비과에 속한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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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16:26:4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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