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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民畵 9 그날 이후
작성자 : 鄭洋  (홈페이지)


민화 民畵 9

그날 이후  


새끼돼지를 꿀꿀이라 부르며
종완이는 봄철 내내 꿀꿀이와 놀았다
꿀꿀이도 종완이를 강아지처럼
졸졸졸 따라다녔다 종완이는
학교 끝나기 무섭게 풀을 베어
돼지우리에서 꺼낸 꿀꿀이를
품에 안은 채 풀을 먹였고 꿀꿀이도
당연한 듯 종완이 품에 안겨
온갖 재롱을 부릭곤 했다

그렇게 몇 달 지나는 동안 꿀꿀이는
제 몸 가누기도 버겁게 몸집이 불어
돼지우리 안에서만 살았다
종완이가 풀을 먹이러 다가가면
종완이를 따라 돼지우리 안을  
비틀거리며 간신히 빙빙 돌다가
종완이 떠나면 털석 드러눕곤 했다

추석 며칠 전 종완이네 집에서는
종완이 학교 간 뒤에 꿀꿀이를 잡기로 했는데
그날따라 출장가는 담임선생 덕분에
신이 나서 일찍 집에 오게 된 종완이가
막 양철대문을 밀고 들어설 때가 바로
꿀꿀이 멱을 따기 직전이었다

다급하게 다가온 종완이 할아버지가
손자를 얼른 행랑채 방에 밀어넣었다
꽦꽦꽦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들으며
종완이가 문구멍으로 마당을 살핀다
칼로 도려낸 꿀꿀이 멱에서
콸콸 쏟아지는 선지피가
흥건하게 널벅지에 담긴다

할아버지가 한 손으로는 손자 손목을 꼭 쥐고
한 손으로는 손자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종완이는 뚬벙뚬벙 방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묶인 네 다리를 바르르 떨다가
마지막 숨을 내뱉는 꿀꿀이를 지켜보았다

그날 이후, 종완이는
주변 사람들과 말하기를 꺼렸다  
하교 길에서도 또래들 몰래
자주 눈물을 훔쳤다
돼지우리에 새끼돼지를 새로 들여도
그 새끼돼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종완이는 고기룰 못 먹었다
할머니가 찢어주는 닭고기를
무심코 받아 먹다가 몇 차례 구역질을 했다
너 이러다가 중 되겠다는 할머니 걱정에도
종완이는 애어른처럼, 차라리
중이라도 되고 싶다며 글썽거렸다
글썽거리는 게 구역질 탓인지
꿀꿀이가 또 생각나선지 모르는 채

“이렁 거시 다 크니라고 허는 지싱게
  괴얀스레 너무 걱정덜 허덜 마러“

할아버지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종완이 어깨만 토닥토닥 두드렸다



[2021-10-22 20:23:1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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