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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15-1. 내 인생에 생강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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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내 인생에 생강 <이현옥의 타박타박>


그 교수를 잊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했겠지만 오랜 시간 내 뇌리를 아프게 지배했었던 그 교수의 말 한마디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학생은 어디 출신인가?”

“봉동입니다.”

“허허~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었지. 고산 자식들은 숯 자루로, 봉동 자식들은 생강 자루로 에미애비를 내려치고 달아난다고 했지.”

이외에도 삼례 사람은 어쩌고, 익산 사람은 저쩌고…, 사람과 출신에 대한 품평을 잔뜩 늘어놓았다. 전주 사람 얘기는 없었던 것 같다.

쫙 깔고도 모자라 약간의 비웃음이 깃든 목소리며 나를 내려다보던 커다란 눈빛, 내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여기저기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목덜미에서 겨드랑이에서 끈끈한 그 무엇이 베어 나왔다. 대학 들어온 후 첫 수치감을 나는 그렇게 경험했다.

그는 시내에서 짱짱한 가문의 자손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당연히 좋은 집안과 학벌이라는 배경은 그를 수식하는데 걸림돌이 없었다. 점잖은 몸가짐과 훤칠한 키, 허연 얼굴에 널찍한 이마, 보살핌을 받고 있음이 느껴지는 세련된 옷매무새…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눈엣가시가 되어갔다.

뼛속 깊은 출신 계급 간 갈등구조는 어디서 어떻게 비롯됐는가. 궁금해지도록 만들었다. 하여 헤겔과 마르크스와 루카치 등이 쓴 책을 손에 들게 한 장본인이 그 교수였다는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그만 모른다.

그렇다. 한마디로 내 인생은 ‘생강’을 빼고는 장식할 만한 그 무엇이 거의 없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얼굴을 그려볼 틈도 주지 않고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생강 유통업자였다고들 했다.

봉동에서 생산되는 생강들을 사들여서 서울에 유통시키는 도매업을 하셨단다. 생강을 트럭에 싣고 서울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허리춤에 찼던 전대를 풀어서 생강을 내준 사람들에게 큰돈을 안겨 줄 정도였다는 것이다.

본인도 물론 이익을 남겼다. 그렇게 돈을 벌어들이자 우리 가족은 서울 서대문 근처로 이사를 했다. 오빠들이 미동초등학교 교실 앞에서 검정색 세라복을 입고, 나는 창경원 잔디밭에서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 찍은 사진이 앨범 속에 갇혀 있던 것을 보아왔으니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짓말일리는 만무할 것이다.

이것 외에 기막힌 다른 얘기를 나는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가끔 나는 믿거나 말거나(들은 얘기라서 이런 표현을 씀)투로 얘기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사실일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많아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90% 이상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 유명했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소리를 치며 우리를 불렀기 때문이다. “저기 두형이 가족이 나왔다.” 내가 대학 다닐 때의 일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벌어질만한 그 사건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통통하고 하얀 얼굴의 여자 국어선생님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 유괴사건의 주인공 ‘조두형’에 관해서였다.

그 사건의 전말을, 그 아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가수 이미자가 불렀다는 노래까지 알려주면서,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더 자세하게 여쭤보고 오라는 숙제를 내 주셨다. 텔레비전 뉴스를 본 한국 사람이면 이 사건을 거의 안다는 것이었다.

숙제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가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이 정도의 숙제는 식은 죽 먹기였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우리들의 속옷을 깁고 계시는 어머니 옆으로 다가간 나는 그 어마어마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조두형’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이웃지간에서 형제처럼 살았다고 했다. 술 한 잔 들고 집에 오시면 아버지는 ‘나’와 ‘두형’이를 혼인시키겠다. 오늘은 아비끼리 정혼을 하고 왔다…. 그러나 얼마 후 조두형 유괴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두형’이 아버지와 함께 범인들의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돈을 싸서 들고 날랐다고 했다.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져 들고 아버지는 암에 걸린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전주 예수병원에서 암을 잘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낙향을 선택하셨다.

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봉동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많은 재산을 병 고치는데 쓰다가, 이곳저곳 깔아 놓은 외상값도 다 떼이고, ‘두형’이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어린 나는 잠깐 혼란에 빠졌었다. 그리고 잊었다. 지금이니까 이렇듯 덤덤하지 한 편의 영화이지 않았겠는가. “유괴당한 조두형과 정혼했을 뻔한 여인 이현옥” 말이다.

어머니가 생방송을 보다가 소리를 치는 바람에 예전 일이 떠올라 머리가 잠깐 멍해졌던 것도 같다.

어머니께서 생강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이곳저곳 남의 집 문전을 기웃거려 번 돈으로 대학물을 먹게 된 나에게 그 교수님의 비수와도 같았던 한 말씀, 이제는 헛웃음이 나올 뿐 장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옛 얘기가 되고 말았다.

과거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화려했으나 불안했고, 두려움에 도사렸고, 밋밋했고 씁쓸한 시간도 있었다. 지독하게 매웠고, 아릿했고, 달짝지근했던 순간도 있었다. 내 인생에서 생강은 이렇듯 다양한 맛을 안겨주었다.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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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174








[2021-11-09 09:51:3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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