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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씨네 마당1. 어머니의 유산 비비추? - 이현옥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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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씨네 마당> 1. 어머니의 유산 비비추? - 이현옥


<연재를 시작하면서...>


  엊그제까지 현역에 있었던 것 같은데 퇴직한 지 벌써 3년차다. 달리 내세울 것이 없는 나, ‘퇴직’이라는 단어를 곧잘 써먹는 편이다. 그런 내게 가끔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 묻는다. 짧게 나는 대답한다. 처음에는 깊은 우울감에, 코로나19에 감염된 후에는 병치레를 하느라 힘이 들었다. 시큰둥하니 말하곤 했다.

퇴직하기 전 한때 나는 보무가 여간 당당하지 않았다.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여행하면서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큰소리 쳤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돌아온 것은 ‘아나~ 떡이오~’ 였다. 내가 겨우 한 일이라고는 자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고, 놀러 좀 다니고 게으름을 피우며 낮잠을 즐긴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문득, 오늘은 여름의 길목이다.  

  단독 주택에 대한 소망을 나는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두 번째 봄을 보냈다. 앞뜰과 뒤뜰이 그럭저럭 형세를 갖추어져 가고 있다.

첫 해에 나는 이런 저런 꽃과 나무를, 손바닥만 한 텃밭에는 채소 너 댓 가지를 심어놓고 신기하고 재미 진 일이 많았다. 어렸을 적 논밭을 나대며 일손을 돕던 때하고는 사뭇 달랐다. 하여 이 소소한 과정과 일하면서 만들어진 사색들을 기록하고자 했으나, 그냥저냥 시간이 흘러가고 말았다. 아니 아직도 글쓰기 근육이? 루틴이? 만들어지지 않은 나는 미루고 또 미루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하게 되면 나는 초야에 묻히고 말 것이다. 무섭고 두려워졌다. 그리하여 무모한 도전을 시도해 본다. 한 달에 1~2회 정도를 요즈음의 경향처럼 글은 짧게, 이미지 중심으로 기록하게 될 것 같다. 씁쓸하기 짝이 없지만 유튜브와 이미지가 글을 집어삼킨 것에 나 역시 동의하므로..(『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 / 김성우, 엄기호 지음, 2020년 참조)

  

1. 어머니의 유산 비비추?

  울타리용 나무들을 쭈욱 심어놓고 잔디도 앉히고, 어떤 식물들을 어느 곳에 배치할까 골똘히 생각할 여유도 없이 이미 내 머릿속에는 온갖 꽃들이 만개하고 있었다. 무작정 설레었다.



  집을 짓는 6개월여 동안 이웃집에 맡겨두었던 화분이 장차 꽃밭이 될 구석에 처박혀 있다. 두 명이 낑낑대면서 차에 싣고 내리고, 너무나 힘이든 나머지 땅에다 부려놓았었다. 거무죽죽한 큰 고무 화분(40cm×50cm 정도)속에는 누가 보아도 흙이 한 가득이었다.

애물단지 같은 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우리 가족은 안다. 어떤 풍파에도 가으내 겨우내 물 한 번 주지 않아도 봄이 되면 뾰족뾰족한 생명체가 올라오리라. 나와 남편은 낑낑대면서 그 화분을 분해했다. 도무지 빠져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 온몸과 농기구를 동원하여 밟고 깨고 부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치 백년 이상을 살아 온 것 같은 뿌리들이 ‘만수산 드렁칡’은 무색할 만큼 얽히고설켜 있었다. 화분속의 뿌리를 싹뚝싹뚝 쳐내고 구근은 짝짝 갈라내어 이곳저곳에 식수(植樹)하였다. 그때가 작년 3월 중순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비추는 겨울을 이겨내고 고개를 내밀었다. 뿌리를 잘 내린 것 같다. 옥상의 화분 속에서도 십 수 년을 견뎌냈는데 그때에 비하면 이곳은 꽃대궐이지 않겠는가.

  나를 존재하게 한 나의 어머니가 유산이랍시고 남긴 것이 - 집과 전답은 고사하고 돈 한 푼 쥐어주지 못하고 - 고작 비비추라니, 망측하면서 씁쓸했던 때도 있었다. 이제 나는 그때 그 마음을 싹 지웠다.



  살아생전 우리 어머니 참 고우셨다. 인생은 비록 이리 꼬이고 저리 비틀어져 고난의 연속이었을지라도 표정이나 마음은 비비추의 잎처럼 싱그러웠다. 우리 집 마당에는 오늘도 어머니의 유산 비비추들이 무더기무더기 향연을 벌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말씀씩 거든다. 곧 마당을 채우겠단다.  

  고백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화초의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 나름대로 찾아보고 물어도 봤지만 비비추인지 옥잠화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얀색 꽃이 피면 옥잠화이고 보라색 꽃이 피면 비비추라는데, 옛집 옥상에서도, 작년 이 마당에서도 무슨 색깔이 피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꽃보다 잎을 좋아했던 탓도 있지만, 바쁘게 사느라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유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올해에는 반드시 꽃이 피는 과정을 관찰하고 말겠다. 그리고 이 마당을 돌보며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페터 빅셀, 2013년 참조)

  나는 바란다. 어디선가 어머니께서 내려다보실 이 화초가 연보랏빛 꽃을 피우기를.

  이왕이면 비비추이기를. / 이현옥

                
글쓴이 / 이현옥(옛 우석대학교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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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B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407










[2024-05-09 14:04:53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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