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옥씨네 마당> 7. 그녀의 넉넉한 인심1- 해바라기 - 이현옥
승인 2024.08.14 14:57:17
7. 그녀의 넉넉한 인심1 - 해바라기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 집 마당에 땅꼬마만 있는 게 아니다. 현재까지 선두주자 화초로는 단연코 해바라기를 따라올 자가 없다. 단기간에 내 키를 따라잡았다. 키뿐만이 아니다. 내 얼굴만큼 넙적한 이파리와 주렁주렁 달린 꽃들, 예상치 않은 결과로 나는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해바라기는 내 의지대로 심지 않았다. 꽃이나 나무를 ‘당근’이라는 앱을 통해 산 적이 있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곳에서 구입하는 이유는 흥정할 수 있고, 정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특히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월동한 것들이 내 집 마당에서 잘 자랐기 때문이다. 화원에서 사온 것들은 종종 온실 속 화초로 끝나곤 했던 것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작년 봄의 끝자락 어느 날, 마당을 쳐다보면서 나는 다가올 계절을 상상하고 있었다. 여름 마당은 그럭저럭 봐 줄만 할 것 같고, 아니 손쓰기에는 이미 늦었고, 가을이 걱정되었다.
가을꽃으로 무엇이 있었더라? 긴 계절 버텨줄 야생 들국화 종류가 떠올랐다. 비가 그치고 나면 화초들 심기가 한결 수월해지므로 당장 서두르자. 그 앱에 들어가 검색하고 그 주인과 채팅하고 운전석에 앉는 데까지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농로를 헤매고 다니다가 농원에 도착했다.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로 보이는 그녀는 꽃과 나무를 좋아해 이것저것 키우다 판이 커지고 말았다고 했다.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지금은 이 앱을 통해 단골도 생겨서 돈을 만지게 되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고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나는 맞장구쳤다.
얼굴이 더욱 훤해진 그녀는 후한 인심을 펼쳤다. 우선 나와 거래하고자 했던 화초들의 윗동강을 잘라내고 뽑아와 내 앞에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주의 깊게 쳐다보는 화초가 있으면 그 앞으로 다가가 포기를 나누어 또 내밀었다. 돈은 코딱지만큼 주고 덤으로 받아 온 것이 족히 두 배 이상 되었다.
비가 나수 내리는 마당에 그것들을 늘어놓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어느 곳에 배치할 것인가. 돈을 주고 산 것들은 내가 이미 충분히 고려했기 때문에 골머리 앓을 일이 없었다. 키가 30cm 가량 되는 해바라기 한 개가 가장 문제였다.
살아있는 생명을 내버리는 성격이 못되는 나는 이 해바라기를 들고 마당의 앞과 뒤를 서너 번은 오갔다. 그 결과 뒷모퉁이 외에는 수용할 곳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집의 중심에서는 뒤쪽이지만,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먼저 눈에 띌 것 같았다. 밝은 낯꽃으로 나를 대신하여 큰절 나누면 될 성 싶었다.
그해 여름에는 키가 70cm 정도 자랐고 딱 한 송이의 꽃을 피웠다. 키 작은 해바라기 품종을 본 적이 있는 나는 내내 그럴 줄 알았다. 아담한 크기에 환한 얼굴까지 여간 흡족한 것이 아니었다.
겨울을 나고 가만 들여다보니 말라비틀어진 형상이 썩 좋아 뵈지 않아 밑동을 과감하게 잘라냈다. 그리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다른 식물들에 몰입했다.
올 여름 그곳에서 내 키를 능가하는 해바라기가 쑥 올라왔다. 뒷모퉁이는 물론 도로 옆까지 장악할 기세로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내가 뒤꼍의 다른 화초를 돌보러 갈 때 몸을 옆으로 돌려서 지나가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무지막지한 성장속도나 번식력에 대해 미리 알아 둘 것을,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것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정녕 바랐던바 아니었던가. 강한 생명력 – 때가 되면 스스로 꽃피우는 – 을 주구장창 달고 다니지 않았느냐 말이다.
게으르게 살겠다, 어떤 사물이나 일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 돌보지 않아도 저렇듯 잘 자라서 꽃피운 것을 심란하게 여기는 이 태도는 이율배반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녀가 내게 해바라기를 안기지 않았다면, 이 꽃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래된 영화 「해바라기」는, 소피아 로렌의 연기와 OST는, 내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린 해바라기일 때 생장 중일 때 줄기가 해를 향해 움직이지만, 다 자란 꽃은 무거워서 줄기를 움직이지 못하고 고개를 꺾게 된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원전 사고의 현장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에 방사성 원소인 세슘과 스트론튬 등을 제거할 목적으로 해바라기를 심었다고 한다. 그 해바라기가 토양 속의 방사성 물질을 흡수하여 조직에 농축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은 더욱더 몰랐을 것이다(이선, “[이선의 인물과 식물]우크라이나인들과 해바라기”, 《경향신문》, 2024. 06. 17.)
해바라기를 덤으로 준 그녀의 넉넉한 인심이 고맙다. 그 해바라기는 지금 꽃 한 송이에 일천 개 이상의 씨앗을 물고 뜨거운 태양아래 고개를 숙였다. 노장의 경외감과 함께 내 눈에는 그 꽃이 〈큰 바위 얼굴〉*로도 보이고, 서양주술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제목} / 이현옥
글쓴이 / 이현옥 전 우석대도서관 사서
출처: JB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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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7 23:35:0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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