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옥씨네 마당> 13. 쑥부쟁이를 먹는 나물로만 알았다. - 이현옥
승인 2024.10.23 16:34:52
13. 쑥부쟁이를 먹는 나물로만 알았다.
우리 집 앞마당의 화초들은 백일홍을 제외하고 키가 고만고만하다. 가족 중 누구를 닮아 그런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땅딸막하다. 그렇다고 본연의 역할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한 송이일지언정 전부 꽃을 피웠다는 말씀이다.
뒷마당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이, 덩치가 불어나는 것이, 누가 봐도 나를 빼닮았다. 지난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갈 데까지 가겠다는 심보로 뻗어나가서 양손을 벌려 품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큼지막한 몸이 남의 밭으로 기울어져 농작물에 피해를 주게 생겼다. 그것들을 우리 집 쪽으로 노선을 변경시키느라고 묶는데 우리 부부는 개미 역사를 했다. 그 꽃 이름이 청화쑥부쟁이다.
지난해 가을 어느날 쑥부쟁이.
오늘 10월 23일 : 만개하려면 일주일은 기다려야할 듯...
이제 뒷마당은 난감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본디 나는 나무만 빼고 아담한 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수국과 해바라기, 버들마편초는 그런대로 봐 줄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난처하여 들여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작년 봄, 쑥부쟁이라는 이름에 혹해 두세 포기 심어 놓고 가을을 기다렸다. 예상 밖의 탐스러운 꽃을 피워냈다. 올해에도 당연히 그리될 줄 알고 마냥 놔뒀더니 웃자라고 만 것이다. 대신에 꽃봉오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글다글 맺었다. 경험자로부터 자문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 아, 공부 또 공부. 이러다가 내가 누릴 자유의 시간을 앗아가지 않을까. 느릿느릿 살아보자고 맹세했었건만, 어떤 물살에 휩쓸릴지 약간 염려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슨 쑥부쟁이 덩치가 저렇듯 크냐는 것이다. 더구나 꽃까지 피우냐는 것이다. 나 어릴 적 봄바람이 온몸을 파고드는 그 둔덕에서 코를 박고 캤던 나물 쑥부쟁이는 어디로 갔느냐는 얘기다.
쑥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발끝에 밟히기 일쑤다. 오죽하면 쑥대머리, 쑥대밭이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쑥부쟁이는 그때도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발 빠른 언니들이 동생들 앞을 한바탕 훑고 간 후에는 더욱 그렇다. 나 살던 근방의 논두렁밭두렁에는 막 얼굴을 내민 새끼 손가락만한 것들만 남아서 소쿠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봄바람에 바싹 숨이 죽고 나면 한 주먹도 되지 않을 것이므로. 데쳐서 무쳐 나물입네 내놓으려면 적어도 반소쿠리는 채워야 한다. 어린 우리들은 언니들의 손이 타지 않을 법한 먼 곳 험지로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래야만 누구 입으로 들어가겠느냐는 어머니의 핀잔을 듣지 않을 것이므로...
그런 봄을 몇몇 해를 보내는 동안에도 나는 쑥과 쑥부쟁이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나물 용도로만 알았던 것이다. 봄나물 채취가 끝나면 그것들 돌아볼 짬이 없었다. 가을에 핀 꽃들은 거의 구절초 혹은 들국화 아니었던가.
올봄에는 쑥부쟁이 나물을 먹지 못했다. 그동안 그것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내가 들판에서 캐왔을 리는 만무한 일이다. 요 몇 년 동안 자연드림 생협 매장에서 구입했다. 아마도 구례 어느 마을에서 재배해 온 것 같았다.
쑥부쟁이에 사마귀가 숨어 있는 모습.
봄이 되면 나는 이 나물을 사서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 무쳐먹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그때처럼 쌉쌀한 맛은 훨씬 덜하다. 올 봄에는 이 쑥부쟁이조차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기후 탓인가. 이 나물을 찾는 사람이 드물어 농가에서 생산량을 줄였거나, 매장에서 추방됐을 수도 있겠다.
가끔 나처럼 이런 경험들을 해봤을 것이다. 사라진 나물들... 벌금자리, 자운영 등등. 다른 식물로의 진화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멸종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연이 자못 궁금하다.(본인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는 유쾌한 인물 ‘이정모’가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멸종열전] 나무가 사라지자 지워진 문명…이스터섬의 교훈” 참조)
뒷마당의 청화쑥부쟁이는 관상용이면서 개량종일 것이다. 지금 한창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그 옆의 버들마편초는 여름부터 피었으며, 아직도 시들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이고 역시 보라색이다.
이 둘의 가을 생은 망가졌다. 두 꽃의 색깔을 고려하지 않고 배치한 땅딸보 주인장 때문이다. 내 딴에 3미터 정도 거리두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자리를 넘나들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본 결과 꺾꽂이 하거나, 아랫동강을 인정사정없이 잘라 내거나, 솎아주어야 했었다. 초보는 그렇다.
내가 그때 무엇을 알았겠는가. “Yesterday, When I was young”, ‘지난날, 내가 젊었을 때’ 말이다. 이병헌의 눈빛 연기가 애잔했던 영화 - ‘로이 클락’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 “그해 여름”의 OST 얘기는 언젠가 따로 써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이만 총총. / 이현옥
글쓴이 / 이현옥 전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출처: JB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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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10:54:36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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