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초의 봄 편지
[책 마주보기] 이병초의 '까치독사'(하채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5월 12일 07시49분
덥다가 춥다가 쨍하다가 비 뿌리다가 바람 불다가 고요하다가 오락가락 날뛰는 날씨 탓에 몸과 마음도 어수선한 5월, 이병초의 봄 편지를 읽어보면 어떨까? 박남준 시인이 귀띔해 줬듯이 봄밤에 읽으면 더 맛이 난다.
누가 보내는 연서인지
고개를 드니 흔적은 없고
바위틈에 끼여 크다 만
밑동이 내 허벅지만 한 소나무 (‘山門’ 일부)
소나무를 보자마자 바위틈에 똬리 트느라고 애깨나 녹았겠다며 ‘어디 큰판에 가서 화끈하게 붙어보지도 못하고 눈두덩 푹 주저앉은 날들’을 지낸 모습이 애처롭다. 그리움에 우툴두툴해진 늙은 소나무가 찢어진 가지에 송홧가루 얹고 있는 게, 나 같아 안타깝다.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으로 5월을 연다. 가만히 ‘너 통하였느냐?’ 묻기에 손가락 끝 세워 어디를 긁어드릴까? 머릿속 무거운 것들이 긁혀 나오긴 하는데 어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고것을 움키기도 전에 호로록 연기처럼 날아간다.
저 초록색 갈피를 뒤적거리다보면
그 속엔 알 품은 까투리가 친정집 주소 적으려다
솔가지 못 빠져나간 반달을 베낄 것 같고
축축한 겨드랑이 말리며 열차 바퀴 소리를 가만가만 재우던 채송화는 어디에 피었나
깜짝 마실 나왔다가 연둣빛 부리를 내민 옥수수알을 반갑게 쪼아댈 것도 같고 (‘봄산’ 전문)
커지는 잎사귀로 부풀어 오르는 봄 산을 초록색 갈피라고 했다. 산을 책 인양 뒤적거리던 시인은 좀 전 소나무에서 어느새 까투리가 되어 솔가지에 걸린 반달을 눈에 넣는다. 저쪽에서 열차 소리가 들리고, 기찻길에 고개 내민 채송화와 인사하고, 기찻길 옆 볼품없는 텃밭에 쑥 올라온 옥수수알과 토닥거린다.
황방산(黃尨山) 기슭 까까머리 소년이 아카시아 꽃이 쏟아지는 길에서 황망히 서서 봄밤이면 주둥이로 청춘을 까먹다가 돌연 행낭(行囊)을 꾸려 '까치독사'로 우리에게 왔다. '밤 비', '살구꽃 피고'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이 序詩, 다음 시집이 決意라면 '까치독사'는 이병초 시인 본연이 시심(詩心)인지 모른다. 종내 풀, 산, 새, 벌레, 삽날에까지 스스로 투영해 온 시인이 ‘까치독사’가 되어 우리에게 일러준 것은 ‘기껏’이라고 했을지언정 시에 목숨줄을 내놓았다는 아름다운 고백이다. 아무나 아무렇게나 고백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 5월이 될 때까지도 쉽게 펼치지 못하고 접어만 두었다. 4월 끝에 와서야 용기를 내어 '까치독사'를 국어사전 뒤지며 읽는다. (‘둬뙈기’, ‘휘까닥’, ‘아시바’, ‘마디게’, ‘입때껏’, ‘암디나’ 등, 풍성한 한국어 어휘에 감복(感服)하며) 띄엄띄엄 절뚝절뚝 행간을 살핀다. 이병초의 5월 편지 덕분에 봄 햇살에 눈이 부시다. ‘놔주렴 놔주렴 뒷곁에 재곡재곡 쌓였을 그을음도 정히 놔주렴(‘봄날’ 일부)’. 제발 놔주자 놔주자.
이제까지 ‘뱀’ 하면 꽃뱀 시집 () 펴낸 미당(未堂)이었다. 5월부터 뱀은 '까치독사'다. 까치독사가 까치처럼 희끗희끗한 피부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줄 알았는데 ‘까치’라는 말이 ‘까시럽다’에서 온 듯 까칠한 성질머리로 붙은 이름인가 보다.
하채현 작가는
'술술 풀리는 한국어 읽기' 저자
인문도시센터 연구원
인문예술의집 소장
출처: 새전북신문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849571
|
[2025-05-13 08:22:40 에 등록된 글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