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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승인 2022.06.07 10:16:16
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2)
권관이 되기 전의 김대수는 어떠했던가. 군졸이었지만 전투 상황에서 보여준 그의 지혜는 이영남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처음에 김대수는 노꾼이었다. 임진년 5월에 이순신 장군과 1차 출정했을 때 이영남은 협선 한 척을 지휘하라는 군령을 받았는데 거기서 김대수를 만난 것이었다. 옥포로 출정해서 왜적의 안택선과 세키부네에 포를 쏘고 있을 때 김대수가 느닷없이 나리, 엎드리세요! 이러면서 갑판에 튀어나왔다. 뭐야, 이러면서 뒤를 돌아보자마자 김대수가 자신을 덮쳐버렸다. 뒤이어 왜적의 조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노꾼이었지만 갑판에서 포를 쏘고 있는 동료를 보러 나왔다가 왜적들의 조총이 협선을 노리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남이 왜군 장수의 칼에 맞았을 때 노로 왜군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영남은 김대수를 자주 만났다. 그의 무예가 보통을 넘는다는 것을 안 뒤로 더 가깝게 대수와 어울렸다. 이영남은 그를 궁수로 썼다. 김대수는 궁수로 활동한 적이 있는 사람처럼 능숙하게 활을 다루었다.
전투 시에 판옥선의 궁수는 대개 두 가지 방법을 썼다. 한 가지는 조준 사격이고 또 한 가지는 집단적으로 특정 방향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것이었다. 바다 위에서 적군과 아군이 모두 흔들리고 움직이는 상황에서 조준 사격은 쉽지 않았다.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그러므로 궁수들이 특정 방향으로 일제히 화살을 날리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적이 밀집해 있을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일반 화살 사이로 애깃살을 쏘았다. 화살이 한 자 정도로 짧아서 가벼운 데다 멀리 날아갔고 일반 화살보다 빠르기 때문에 칼로 쳐낼 수도 없었다. 특히 밤에는 소리만 나고 화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왜적들은 애깃살을 도저히 막을 수는 없었다.
즉 전투 시에 활이 얼마나 유용한 무기인가를 김대수는 알고 있었다. 전투의 상황을 읽어내고 여기에 대처함과 동시에 왜적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방법도 알아냈다. 왜구의 조총 소리가 난 뒤 다시 조총 소리가 나기까지 스물을 셀 정도의 짬이 생긴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려준 이가 대수였다. 이영남은 이를 곧바로 전투에 응용하는 훈련을 시켰다. 판옥선 갑판 기둥 뒤나 화포 구멍 옆에 숨어서 시위에 화살을 걸고 대기해 있다가 총소리가 끝나자마자 왜선을 향해 화살을 집중적으로 날리는 전술이 그것이었다. 전략은 딱 들어맞았다. 전투 때마다 판옥선에서 날리는 궁수의 화살은 엄청난 위용을 보였다. 조총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의 사수들이 빗발처럼 쏘아대는 화살에 왜군은 부지기수로 죽어 나갔다. 이런 김대수이니 이영남이 그를 가깝게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함에도 대수는 언행이 조심스러웠고 무슨 말을 하든 신중에 신중함을 더해서 입을 떼는 김대수.
-나리, 용기가 있다는 말은 적에게 결사 항전의 정신으로 무작정 전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공포와 패배의 색채를 이기고 드디어 행동으로 옮긴다는 말이 용기에 더 가까운 말입니다.
이영남은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럴수록 그의 과거가 궁금했다. 그러나 김대수는 자신의 과거와 관계된 얘기는 일절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김대수 앞에 형님, 하고 다가온 이가 있었다. 아니 자네가 여기 어쩐 일인가. 대수에게 형님이라면서 달려온 이는 전라우수영에서 전출된 권관이었다. 그런데 권관이 일개 궁수에게 형님! 이러면서 달려오다니. 대수는 난감해하더니 이영남에게 오늘 밤 술 한 잔 먹을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평소의 김대수가 맞는가 싶었다. 누구에게도 청이라는 것을 절대 안 하는 이가 김대수이기 때문이었다. 이영남은 그 술자리에 자신도 끼워 주면 허락하겠다고 농을 했다. 대수는 흔쾌하게 그러자고 영남의 말을 받았다.
그날 밤에 이영남은 김대수의 과거를 알았다. 김해김씨이며 고향이 남원이라는 것, 아버지 김민국이며 기축옥사 때에 희생된 어른이라는 것을. 그의 아버지는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였으므로 학문과 병법, 검법을 수련했으며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김대수도 글을 깨쳤고 병법과 검술을 공부했다는 것을. 그러나 더 깊은 얘기는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대화에 끼어드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이어서 영남은 조용히 술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두 달 뒤에 영남은 김대수를 적극적으로 권관에 추천했고 장수들은 이영남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런 까닭으로 노꾼이었던 대수는 권관이 되어 이영남 옆에 있게 되었다. 이런 김대수의 누이가 순옥이었다.
이영남은 옥포해전에서 입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었을 때 순옥을 그저 손끝이 야무진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연유로 전라좌수영에 들어와 병사들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군복을 짓고 깁는 일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간혹 그녀를 만날 때면 순옥이 만만한 아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손끝이 맵찬 것처럼 그녀의 말투에도 단호함이나 당참이 느껴졌다. 고개를 늘 숙이고 있어서 얼굴이 예쁜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군복을 내줄 때 살짝 들키는 자태는 고왔다. 이런 그녀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김대수의 누이라니.
이영남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술 한잔을 청했다. 관솔불이 방안을 따뜻한 온기로 채우고 있었다. 자신이 술청에서 잔심부름하는 아낙네가 아님을 알면서도 술을 쳐달라고 함은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순옥은 짐작했다.
순옥은 이영남 장군을 알고 있었다. 전주에서 왔다는 것, 전의이씨 명문가의 자손이라는 것, 조정에 그의 일가가 꽤 많다는 것, 병사들과 훈련할 때는 인정사정이 없는 냉혈한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력 때문에 그에게 눈길이 갔던 건 아니었다. 병사들 옷을 수선해주면서 얻어들은 얘기가 순옥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었다. 이영남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다감한 사람이라고들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사람의 됨됨이가 푸근하고 무던해서 정(情)이 많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귀한 존재이며 누구도 특별한 이유 없이 하대받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며 실제로 그는 병사를 권관으로 추천할 때 양반과 상민과 천민을 구별하지 않고 사람됨과 실력만을 기준 삼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내심 기뻐했던 순옥이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는 사나이라면 그 속이 얼마나 넓고 깊으며 푸근할 것인가. 이영남을 생각할 때마다 순옥은 마음이 설렜다. 자신은 김해김씨 가문의 고명딸이었다. 아씨라는 말을 듣고 자란 유복한 집의 존재였다. 그러나 아버지 김민국이 정여립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누군가의 밀고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전주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은 선비가 목숨을 잃었다는 말이 남원까지 들렸고 그런 소리가 들린 지 사흘도 되지 않아서 병졸들이 들이닥쳤다. /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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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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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11:20:4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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