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옥씨네 마당>2. 꽃 한 송이 피우기 고되다. '조선작약' - 이현옥
2. 꽃 한 송이 피우기 고되다 – 조선작약
난생 처음 나무시장이라는 곳에 가봤다. 듣도 보도 못한 묘목들과 꽃들이 즐비했다. 구경나온 사람들, 흥정하는 사람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직원들. 낯선 풍경 앞에서 쭈볏거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오, 그때! 누런 종이에 손 글씨로 ‘조선작약’이라고 써놓은 푯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구근 두 덩이와 20cm쯤 자란 작약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비닐에 싸여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아니 이게 웬 떡이람! ‘조선’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이가 들면서 나는 하해와 같은 마음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영 딴판이 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동서남북(이것저것) 가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요즈음 나는 우리 것, 옛것이 자꾸 그리워진다. 최순우 선생의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가 조선오이, 조선호박, 조선고추는 물론 조선간장, 조선된장은 얼마나 애지중지 여기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어린 시절부터 보고 먹고 즐겼던 토종, 재래종을 찾아보려고 발품을 팔고는 했다. 그러나 내 성에 찰 만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조선작약’은 드디어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내 눈에 제일 띌 만한 곳에 세 그루를, 그러고도 섭섭하여 세 그루를 더 심었다.
조선작약이 꽃을 피울 때부터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
애초에 나는 꽃자주색 목단(모란)을 집 초입에 심고 싶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에 의하면, 이 나무를 화단에 심으면 부자가 된다나. 어쩐다나... 신은 뭘 하고 계시는지 주머니가 두둑할 만큼 나에게 돈을 주신 적이 없다. 뒤늦게라도 이런 속설을 따라하고 싶은 심사가 내 안에 있었나 보다.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나는 목단을 포기하고 말았다. 일단 토종 구하기가 어려웠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 나름 목단의 아류라도 심어야겠다.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조선작약’이란 이름은 나무시장에서 쓰는 말인 것 같다.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조선작약’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입말이 좋은 것을 어떡하겠는가.
그 작약이 인색하게도 꽃 한 송이 피우고 입을 다물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이 꽃대가 독보적으로 치고 올라올 때 내 눈에는 왠지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다. 열흘 가량 꽃을 물고 있을 뿐 망울을 터트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런 어느 날 굳게 다물었던 입이 툭 열렸다. 그리고 꽃잎이 한잎 두잎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삼일 세찬 비바람 앞에서 결국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더는 그 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기어이 다가간 나는 꽃대를 일으켜 세워 보았다가 그 옆의 다른 풀잎에 기대놓기도 했다. 저것이 무엇이라고 이렇듯 애간장을 태우는가.
얼마 전 우연히 YTN뉴스를 보았는데 꽃구경 나온 젊은 부부의 인터뷰 장면이 꽤나 인상 깊었다. 그네들 등 뒤로는 작약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군락이라 여겨지는 그곳 꽃밭을 따라갈 수 없겠지만 현옥씨네 마당의 여섯 그루도 소신껏 꽃을 피울 것이다. 기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 와서 첫 번째로 선보인 ‘조선작약’의 꽃 색깔은 연한 분홍빛이었다. 토종목단의 대안으로 들여놓은 ‘조선작약’이 붉은색 꽃도 피어줘서 밥값 낼 때 머뭇거리는 선배가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목단꽃문양의 이불을 덮고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이제야 비로소 나는 작약(풀)과 목단(나무)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 이현옥
글쓴이 / 이현옥(옛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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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8 13:29:16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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