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이현옥 타박타박5-1. 그래도 꽃이 핀다
작성자 : 김경운 
파일1 : 1.png (189.5 KB)
파일2 : 2.png (146.4 KB)






5-1. 그래도 꽃이 핀다. <이현옥의 타박타박>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 를 읽고 내가 숨을 몰아 쉰 것은 이렇듯 비운의 사내가 있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삶이 내 가슴에 들어앉아 나갈 기미를 안 보인다.

단 한 번도 인생의 하이라이트는커녕 밑바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남자 스토너. 그만큼 불행하게 살다간 사내들을 나는 소설이 아닌 현실 속에서 여럿 보았다.

얼굴도 모르는 내 아버지와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 내 시아버지, 지금은 거의 돌아가고 없는 동네 친구들의 아버지가 그들이다.


그리고 3주 전에 떠난 나의 큰오빠는 어떤가. 그의 흑역사를 기록하지 않고는 남은 인생을 회한과 죄책감 속에서 살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싱크대 앞에서 미나리를 씻다가 눈물을 쏟아 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군에서 휴가를 나올 때 『신념信念의 마력魔力』, 『카네기 처세술處世術』 이라는 책을 사 들고 왔다.

군화도 벗지 않은 채 마루에 벌러덩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이든 듯했다. 얼굴 위에 책이 엎드려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나는 조심조심 다가가 책 제목을 들여다보았다.

한자로 된 제목을 옥편을 뒤져 알아내느라 애먹었다.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아 부스스 일어나는 오빠에게 책 제목이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어떻게 알았느냐며 나를 대견해 했다.


그가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던 버릇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나와 7살 터울인데 어린 내가 보아도 공부를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교과서를 펼치기는 했으나, 5분도 채 안 되어 얼굴을 책으로 가리고 잠들기 일쑤였다. 어머니의 애간장 녹는 소리가 들릴 텐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듯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1등을 하는 쾌거를 누렸다.


중간고사 치르기 전으로 기억된다. 어느 밤 9시 즈음이었다. 오빠 또래 두어 명이 우리 집 울타리 너머 기웃거리고 있었다. 20~30분 정도를 서성이다 지쳤는지 물을 뜨러 방문을 열고 나온 나를 살짝 불러 세웠다.

큰오빠 뭐하냐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자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이냐고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재차 물었다. 나는 방문을 열어 보이며 현장을 보여줬다.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본 오빠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리를 떴다.

나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을 알고 싶었던 걸까.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오빠에게 어젯밤에 친구들이 왔었다고 말해 줬다. 그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공부를 얼마큼 해야 1등을 하느냐고 묻기에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확인하러 온 모양이라고 했다.


나도 사실은 그가 1등하는 비법을 이해할 수 없어서 되물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한다고 했다. 다른 애들은 장난치거나 졸고 있을 때 본인은 선생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었더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별거 아니라고 말해줬다.

그런 그도 결국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구한 날 책을 덮고 잠을 청하던 그는 5등, 10등 뒤로 물러나고 만 것이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더 이상 이 광경을 지켜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오빠에게 과외를 시켰다. 정말이지 이 대목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우리는 보릿고개를 넘느라 얼굴들이 누렇게 떠 있었다. 동생은 토사곽란을 일삼아 했다. 바로 위 언니는 한 입이라도 덜어보자고 할머니 댁에 시중들러 보내졌다. 작은오빠는 읍내 이발소에서 시다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과외 선생님과 오빠가 있는 뒷방에 허연 쌀밥과 계란찜을 들이밀었다. 조물조물 겉절이까지 차려낸 상차림을 보고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어디에 저 많은 쌀을 숨겨 놓았을까. 계란이야 헛간에서 닭이 알을 낳고는 했으니 꺼내왔다손 치더라도…….

평소에도 밥솥 안쪽에 쌀을 한 주먹씩 놓아서 지은 밥은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었다. 어느 누구도 언감생심 그의 쌀밥그릇과 계란찜을 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장차 우리 집안을 끌고 갈 기둥이자 장남이었으므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한 우리 집의 가장이나 진배없다는 말을 어머니께 귀에 박히도록 듣고 또 들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밥상은 적은 양의 꽁보리밥과 희멀건 된장국, 그가 남긴 겉절이가 전부였다.

언젠가 작은오빠가 된통 누명을 쓰는 일도 생겼다. 계란이 없어진 것이었다. 동생들은 손이 닿질 않아 꺼내지 못했을 테고, 필시 작은오빠가 훔쳐 먹었을 거라며 어머니는 그를 잡도리했다.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고 펄펄 뛰어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범인으로 큰오빠를 지목하였지만 어머니의 장남 사랑은 끝이 없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느냐 어머니는 공정하게 사랑을 분배했음을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우리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전북포스트  jbpost2014@hanmail.net

<저작권자 © 전북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16








[2021-04-01 13:30:03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