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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5-2. 그래도 꽃이 핀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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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래도 꽃이 핀다. <이현옥의 타박타박>


그가 시내의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모자를 삐딱하니 쓰고 불량스럽게 생긴 오빠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엎드려서 기도를 하셨다. 울고 또 우셨다.

새벽기도를 다녀오시면 큰오빠 머리맡에서 그에게 씌워진 마귀사탄을 물리쳐 달라며 울부짖었다. 오빠가 그 소리를 듣고는 벌떡 일어났다. 금방 무너질 것 같은 흙벽을 주먹으로 한방 날리고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갔다.

어머니의 대성통곡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은 듯이 잠을 자는 척했다.


한동안 뻥튀기를 만들어 돈을 벌겠노라 그 기계에 빠져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던 적도 있었다.

우리 여동생들은 그 옆에서 동그랗고 납작하게 나와야 할 뻥튀기가 삐뚤빼뚤하거나 반 토막 나거나 끄트머리가 갈래갈래 찢어진, 도저히 내다 팔지 못하게 생긴 뻥튀기를 받아 입에 넣고 맛을 음미했다.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사카린을 넣었는지 달짝지근한 것이 여간 맛난 것이 아니었다.


이 모습을 오래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까짓 거 팔아서 무슨 돈이 되겠냐. 쌀만 축내고 있다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의 뻥튀기가 비로소 성공할 무렵 뻥튀기용 전용 쌀이 나와서 그의 수고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군에 입대하였다. 직업군인이 되었다. 장교가 되더니 동생들 학비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서너 차례 학비를 내고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 예비군 중대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방위병들과 예비군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것 같다.

명절 전이면 성인 남자들이 선물을 가져 오곤 했는데 돼지고기 한두 근, 국거리용 소고기 한 근을 끊어오거나, 정종 한 병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마루에 고깃근이나마 내려놓고 가는 그들을 붙잡아서 우리 가족이 명절을 지내려고 사다 놓은 식재료까지 얹어서 보내곤 했다.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런 밤이면 으레 큰오빠 부부는 싸움을 했다.

새언니의 한숨 소리를 거푸 들으며 나는 지방의 사립대학에 다녔다. 브레히트와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점점 심취되어 갔으며,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막심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었다. 판매가 금지된 김남주 시인의 시집을 몰래 복사하여 들고 다녔다. 큰오빠의 책상 위에는 닳고 닳은 『톨스토이 人生論』과 『信念의 魔力』, 『카네기 處世術』 등이 돌아가며 펼쳐 있었다.


10여 년 먹고 살만했던 예비군 중대장을 사표 내고 그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텃밭을 팔고 집을 팔고 형제자매들의 돈까지 끌어댔으나 IMF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덜컥 부도를 맞았다.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어느 기도원으로 잠적했다. 우리들은 어쨌든 살아만 있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종교가 그를 살게 했다고 두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종교에 푹 빠져 20년 가까이 돈벌이와 먼 세계에서 살았다.

언젠가는 다시 재기할 것이다, 우리들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우리에게 진 빚을 갚기는 커녕 본인의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끝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아니 일어날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그의 눈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말도 현실과 동떨어져 어떤 신념에 사로잡힌 듯 무슨 마력에 의해 허우적대는 것 같았다.


그는 어쩌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가 소로의 『월든』이라는 책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책의 한 구절처럼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마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사고팔고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의 돈으로 최소의 소비를 지향하며 살기로 생의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우리는 큰오빠의 변화된 삶을 비난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더 이상 집안의 구세주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곧 죽을 것 같다. 위암 말기에다 암세포가 간과 폐까지 전이되었고 복수가 찼다고 했다. 죽은 물론 물도 목에 넘어가질 않는다. 끝까지 온 것 같다, 내 몸에 칼을 대지 않겠다, 자연치유요법이 있다면 따르겠다,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의 얼굴을 보니 달관한 사람마냥 평온해 보인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뿐이라며 허허 웃음을 짓는다. 그동안 고마웠다. 말끝마다 후렴구처럼 덧붙인다. 그가 누렸던 당연한 권리를 내던지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의 말들을 나는 건성건성 들었다. 눈물이 솟구쳐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의 쓸쓸한 얼굴을 마주하고 있기가 힘이 들었다. 넓고 멀리 깊고 짧게 응시하던 그의 눈빛은 여전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가 꾸었던 꿈들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쫓았고 지상에서 이루고자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 병원 창밖의 세계는 여전히 비루했다.


죽음이 가까워졌다. 그의 이마가 돌처럼 서늘하다. 온기라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가 가파르게 숨을 몰아쉰다. 눈은 아예 초점을 잃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오빠를 어떻게 보내나. 울부짖는 일 외에는 아무 짓도 할 수가 없다. 내 생애 처음으로 큰오빠 얼굴을 더듬어 본다. 미안해, 오빠. 정말 미안해. 사느라고 고생 많았어, 오빠.

그가 숨을 멈추자 응급실 침대 머리맡 의료용 전산 장비에 들쑥날쑥하던 녹색의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반듯해졌다. 이제 두 눈을 감겨주라고 누군가가 내 어깨를 도닥이며 귀띔을 해 준다. 몇몇 죽음을 치르고도 나는 여전히 서툴기 짝이 없다.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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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78





[2021-04-16 07:47:17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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