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 고등부문
승인 2023.10.11 19:21
거꾸로 서보기
고교생들의 언어는 발랄하다. 일상의 소소한 모습이며 이런저런 사회현상에 오늘의 색감을 입힌 언어의 향연은 시의 활력을 돋운다. 학업에 매여 시냇물 소리를 오래 들을 수 없고 제비집이며 구절초며 개여울 못 건너고 애타는 가을 여치를 찾아볼 겨를은 없어도 축축해지기 일쑤였을 제 속내를 짚어보는 시의 눈금은 해맑다. 하지만 세월 또는 외로움 이런 단어들이 끼어 시의 긴장감을 여지없이 허물어버린다. 그러나 괜찮다. 부지런히, 더 치열하게 형체가 아리송한 이 단어들과 부대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들은 좋은 시를 찾는 데 고심하면서도 장차 이 학생이 오래도록 글을 쓸 만한 뒷심을 가졌는가에도 관심을 가졌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김하은(춘천여고), 신주희(신봉고), 윤시은(판교고), 이시우(안양예고), 손정윤(안산강서고), 이재희(수원영덕고), 박창현(안양예고)의 작품들이었다. 우리는 「세면대 없는 욕실」, 「병실에서의 대관식」, 「안녕, 나의 기린에게」, 「누수된 새벽」, 「할아버지의 여름」, 「소나기 내리던 날」, 「물고기」 등의 작품을 오래 읽어보면서 숙고를 거듭했다. 결국 「세면대 없는 욕실」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머리 다친 아버지 모습을 형상화한 「병실에서의 대관식」을 당선작으로 뽑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시에 적힌 상처의 심각성과 언어미학은 별개라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당선작 「세면대 없는 욕실」은 한 개의 상황에 집중하는 시적 긴장을 보였다. 과거의 일이 곧 오늘의 일이라는 듯 가난한 욕실 사정을 추려내면서 반전을 일궈내는 시의 뒷심은 인상적이었다. 시의 끝부분 “그러나 어머니가 모르는 비밀 하나”에 이르러 물구나무를 서서 아침을 견디는 긍정의 힘은 시에 장착된 무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종결어미 ‘-지’가 반복된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거꾸로 서서 뿌리의 힘을 키우는 낙관적 절망이 이 결점을 충분히 기워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병초, 김헌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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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대신문 https://www.jbpresscenter.com/news/articleView.html?idxno=50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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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7 10:28:42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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