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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량의 바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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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함께 노량해전서 전사한 이영남 ‘청년 장군’의 삶 조명…소설 ‘노량의 바다’


이병초 시인이 노량해전에 참가했다 전사한 청년 장수 이영남을 소재로 펴낸 역사소설.


작가는 영화 <한산>의 흥행을 예감한 것일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참전했던 ‘열혈 청년 이영남 장군’을 조명한 소설이 출간됐다. 이병초시인이 집필한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다.

작가가 처음 이영남을 마주한 곳은 전북 전주에 위치한 선충사였다. 선충사는 1598년(선조 31) 노량진 전투에서 전사한 이영남 장군을 기리기 위해세운 사당이다. 이 작가는 우연히 이곳을 방문했다가 그의 일대기를 듣고 영감을 얻었다.

저자는 글머리에서 “이영남에 대한 내 관심은 유생의 글줄에 있었다. 그가 순절한 지 무려 200년이 넘는 순조 6년(1806)에 송상열 등 전라도 유생 75명이 조정에 상언(上言)한 지점, 초야에 머물지언정 조선 역사의 생명체로 움직이고자 했던 선비들이 이영남의 불꽃 같았던 28년의 삶이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붓끝을 벼린 지점”에서 소설이 시작됐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는 너무 오래 지나쳐 있었다. 이영남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오랜 발품을 팔았어도 글을 쓰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이영남(李英男, 1571~1598)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은 공교롭게도 당시 영남(英男)은 흔한 이름이었던 데다, 임진왜란 7년 동안에만 이영남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존재해서다. <난중일기>에도 이영남으로 추정되는 이름과 관직이 60회 이상 나타났음에도 그가 어떤 집안의 이영남인지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는다.

이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한 사람의 성씨를 찾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라는 불행 속에서 전사했거나 전쟁에 참여했다는 점만으로도 같은 이름의 이영남들은 충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이영남의 고향인 전주의 풍광이 유려하게 펼쳐내고 그가 무예를 닦았던 모악산도 등장시킨다. 전주 사람들에게 피바람으로 들이닥쳤던 기축옥사(己丑獄事)도 아프게 그려냈다.

소설가 김병용은 “오백여 년 가까이 책갈피 안에 갇혀 있던 청년 이영남을, 책 밖으로 역사 바깥으로 이끌어낸 소설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한 시인의 붓끝에서 만난다”고 평했다. 그는 “거기, 이순신 장군과 함께했던 우리 청년들이 있다. 거친 바다, 더 거칠게 휘몰아치는 외세의 침탈 앞에 젊은 조상들은 생을 던져 우리의 바다를 지켰다”면서 “앞으로 남해를 볼 때마다 이영남, 이순신과 함께했던 수만의 이름들이 떠오를 것”이라고 썼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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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08070923011










[2022-08-07 14:20:38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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