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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곗날" - 이병초 시인
작성자 : 장현우 


곗날



  - 이 병 초



참깨 베어낸 자리 오목하게 파서

삭달가지 불쏘시개 한 줌 깔고, 장작 쌓고

불을 댕긴다 검게 뭉클거리는 연기 다 빠져나가고

야울야울 이글거리는 잉걸불

그 위에 철망 걸고 도톰하게 썰어 온 돼지목살을

굽는다 지글지글 기름방울 떨어질 때마다

불길 확 솟으며 냇내가 묻는 목살

마늘된장 찍는다 비계 많은 쪽만 골라먹는 놈은

입천장이나 데어라. 저만 오래 살겠다고

술담배 끊은 비겁한 놈은 똥꼬 대라고 조져라!

가을햇살에 심줄 튀어나오며 붉어진 목

바람 타는 수수모가지처럼 몸이 흔들린다

학교 갔다 돌아와 허둑거리며 솥뚜껑을 열면

부우웅 날아오르는 파리떼

파리가 죄 빨아먹은 붉은 수수알 깨금깨금 빼먹고 나면

입술이 혓바닥처럼 깔깔했지

토방에 뱉은 수수껍질 쓸며 눈앞이 흐려왔지

비틀거리는 친구의 귀밑께 뒷목께 히끗히끗

세월이 튼다 양글양글 여문 쥐밤 닷 되 따오겠다는 놈은

바위그늘에 잠들었다 성묘왔지 싶은 가을햇살이

상수리나무 잎사귀 핥아대며 그림자를 늘린다



[현대문학] 2006년 10월호 에서

[2006-12-18 15:10:01 에 등록된 글입니다.]


관리자
재밌게 읽었습니다. 늘,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2006-12-19
00: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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