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초의 시비평 몽당연필] 2. 정양 시에 간직된 전북 토박이말의 현재성
승인 2023.04.05 16:21
자본의 횡포나 세태 담론에 간섭받음이 없는 선생 시의 살갗은 전북의 토박이말로 형상화된 지점에서 절정을 이룬다. “오매 환정허건네 더듬기는 누가 더듬어 이 도동노마/ 지꺼시 뻣뻣혀징게 자꾸 소네 단능구만……”(‘도둑질’)라는 능청과, “암껏도 몰르넌 나를 호밀바트로/ 암시랑토앙케 끌고드러강 게 누구였냐고/ 누가 먼저 도라까졌더냐”(‘연하남들’)라고 딴지 거는 대목에 이르면 전북 토박이말이 입에 쩍쩍 들러붙는다.
고독한 낭만주의자 허 생원을 앞세워 “아 글씨 이따마난 황구렝이가 주둥이를 짝 벌림서나/ 나한티 달라들지 안컨냐? 그리서 내가 잠쩌르/ 그노므 황구렝이 벌린 주둥아리를 두 소느로/ 쫘악 찌저버링게넌”(‘뻥쟁이냐 허풍쟁이냐’)이라고 전북의 입말로 시의 정황을 끌어가는 구절은 날것의 현장감이 당장 활자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이 시편들 뿐만이 아니다. ‘보리타작’, ‘다시 만나서’, ‘비얌괴기’, ‘딱 한 모금’, ‘땜쟁이 노래’ 등의 주인공들이 걸림새 없이 줄줄 쏟아내는 입말에는 가난하고 못 배워서 기죽어 지냈을 틈이 보이지 않는다. 말하는 도중에 입똥내가 튀기도 했을 천연덕스럽고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북 토박이말의 어법 속에는 최첨단의 문명이 명백하게 잃어가는 사람이 있고, 사람다움의 감성이 진득하게 배어 있다.
이 정보화시대에 선생의 시편들은 어쩌자고 1950년대 전북의 입말에 집중할까. 거대자본이 구획해 놓은 삶의 질서를 거절하는 시적 장치로서의 전북 토박이말- 이런 뜻과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시 언술 이전에 존재했던 삶의 행위와 전북의 입말을 중시한 선생의 언어미학은 부조리한 현실에 복종하는 언어적 쓰임새며 사회적 가치를 거절한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성에 대한 반성조차 없는 건조한 세상에 전북의 토박이말을 해학과 풍자가 맞물린 통렬한 어법으로 선물한 지점, 소소한 일상에 접목된 역사적 사유가 새로운 생명체로 영롱해지는 지점에서 『암시랑토앙케』는 현재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얻는다.
정양 선생의 시편들은 모두가 아름답게 살기를 원한다. 세상이 천해지든 말든 강둑이며 산그늘에 골고루 자라는 온갖 식물처럼 존재하기를, “질 게 뻔해도” 오늘을 사는 모두가 존중받기를 원한다. 여든을 넘기셨어도 여전히 현역 시인인 정양. 앞으로도 선생의 시편들은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시는 삶의 진정성을 획득하며 시의 상상력 또한 여기에 근거한다.”라는 진실을 언어의 무늬로 보여주시리라 믿는다.
이병초 시인
출처: 전북도민일보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2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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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5 23:27:1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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