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포구
서수찬
핸디폰을 벌리듯 바지락을 벌리면
부재 중 전화번호처럼
시커먼 갯벌만 들어 있구나
밧데리 같은 갯벌이 저렇게 망가졌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바지락을 열고 또 열어보네
갯벌도 인간을 닮아가는가
통화도 되지 않는 바지락 껍데기를
습관처럼 손에 들고 놓칠 않네
한시라도 빈 껍데기라도
들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갯벌
어쩌다 철새가 찾아오면
스팸메일처럼 삭제하기 바쁜 포구
잘못 걸려온 전화인 양 어선 몇 척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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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7년만에 선보이는 서수찬의 시집에는 우리네 식민지적 삶의 여건과 그 세월이 쓰라리게 음각되어 있다. 분단 이후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조국의 식민지적 여건은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은 채 60여 년 세월이 헛되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서수찬의 시들은 이를 앙다물고 확인한다. ‘군홧발에 밟힌 채 모질게 땅에 누워서 옆으로 자라는’ 대추리 들판의 벼포기처럼 서수찬의 시는 마비되는 우리의 통증을 생생하게 되새긴다.
서수찬의 이 쓰라린 힘 쓰라린 그리움은 우리사회의 불감증으로 死角化하는 대추리 도두리의 꿈을 銳角化함으로써, ‘지금이 어느 시댄데’라며 우리를 야코죽이는 음흉한 역사 앞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 (정 양) |
[2007-04-12 12:26:50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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