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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13. 그해 여름 2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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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13. 그해 여름 2


그해 여름 2.


  시인 채수영. 당시 녀석은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보다도 그의 차분한 품성에 우리는 먼저 반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아는 바를 먼저 말하는 법이 없었고, 무슨 말을 할 때도 상대방의 입장을 늘 배려했다. 녀석은 따뜻했고 학우들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친구들에게 밥값, 술값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녀석에게 기죽은 것은 녀석의 품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말로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겼고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최고인 데다 남들 어려운 꼴을 못 보는 진짜 휴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영은 자신에게 따라붙은 언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글줄, 오직 소설에 집중하는 녀석의 지구력은 시를 쓰겠다고 가쁜 숨만 식식 내쉬다가 제 풀에 거꾸러지는 나를 창피하게 했다.

  그러나 여기는 여학생들이 없었고 남들 어려운 꼴도 안 보였으며 사람들이 거의 안 사는 동네인지라 녀석이 영화배우 같다고 해서 내가 기죽을 일은 없었다. 글줄을 잃어버릴 만큼 우리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끼니를 굶든 낮잠을 자든 밤을 하얗게 새든 말든 뭐라고 할 사람이 우리 주위엔 없었다. 어쩌다 앞집 방위병이 가져다주는 신문, 시끌벅적한 세상 소식을 발가락으로 펴 봐도 우리를 타박할 그 누구도 없었다.

  구름이 마당에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사이로 새소리 바람소리가 헤집고 다녔다. 느릿느릿한 소 울음소리를 베고 여름 한철을 뒨정거렸다.

  “병학이 헌티 연락허까? 갸 혼자 전주에 있을 건디.”

  수영이가 말을 꺼냈다. 하긴 병학이가 마음에 걸리긴 했다. 6․29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밤늦게까지 전주 시내를 휘젓고 다니는 이들 틈에 나도 끼었던 것이다.

  시위대가 중앙시장으로 들어서면 육교에서, 구경꾼들 사이에서 날아든 빵이며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기도 했다. 하지만 늘 외톨이었던 내가 드디어 여학생을 만났을 때, 병학은 어땠던가. 짜식이 주동자가 되어 밤만 되면 나를 찾지 않았던가.

  임금님 다방에서, 그 건물 2층 ‘준’ 커피숍에서 그 여학생과 이마를 맞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을 때면 느닷없이 나타나서 나를 한성집으로 끌고 갔던 것이다. 그 여학생에 대해서 뭔 얘기를 들었는지

  "마전馬田에 계신 부모님을 봐서도 니가 이러먼 안 된다잉. 너는 전주 이 씨 장손 아녀? 참말로 우리허고 안 맞는 여자당게.“

  입에 거품을 물고 내 인연을 박살낸 놈. 그러나 우리는 한성집 정읍집 동부시장 닭내장집에서 최루가스를 털어내며 소주잔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수영이와 내가 전주를 비운 지금, 친구들이 죄다 군대에 가 있는 지금 병학에겐 전주가 휑당그레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편지를 보내자.”

  그 이틀 뒤 병학이는 쌀말을 메고 왔다. 식구가 셋이 되었지만 우리에겐 달라진 게 없었다. 끼니때면 등산용 석유버너에 밥을 안쳤고 김치와 마늘장아찌, 도둑고양이가 핥아먹다 남긴 오징어무침을 플라스틱 상에 차렸다.

  양파를 채 썰어 코펠 뚜껑에 볶아서 먹기도 했지만 고기반찬으로 몸보신 양 요량이 아닌, 어디까지나 글공부하러 온 것이니 꼿꼿하게 독 오른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어도 불만이 없었다.

  앞집 방위병이 제집에 들어온 꽃뱀을 잡아와서 이거 먹을 거냐고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세월이 갔다. 방위병 손에 들린 꽃뱀을 보자마자 병학이가 이게 웬 떡이냐고 덥석 꽃뱀 기다란 것을 받아버렸다.

  “야야, 그냥 버려. 어떻게 먹으려고 그래?”

  나와 수영이는 병학이를 말렸다. 짜식은 이런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어느새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능숙한 솜씨였다. 해병대를 제대한 녀석은 무슨 훈련 때 산에서 이것들을 주식으로 먹은 적도 있다고 그랬다.

  해병대는 바다에서 육지로 침투하는 부대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하냐고 물었더니 안 가봤으면 말을 말라고 하면서 껍질 벗겨냈어도 꿈틀 꿈틀거리는 뱀을 토막지게 썰고 있었다. 햇살 좋은 데에 이 토막들을 늘어놓고 소금 쳐서 말렸다.

  산그늘이 마당에 내려오기 시작했다. 병학이는 소나무 굵은가지를 긁어모아서 불을 지폈다. 연기가 다 빠져나가고 잉걸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짜식은 햇살에 말라서 꼬독꼬독해진 꽃뱀 토막을 아주 정성스럽게 잉걸불 위에 올려놓고 딴전을 피웠다.

  뱀 고기는 한번 맛들이면 그 맛을 영원히 못 잊는다느니, 고기맛이 꼭 닭고기맛이라느니, 지금 뱀은 살이 덜 붙어서 별맛이 없고 10월 말께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뱀을 잡아먹어야 제 맛이라느니 시키지도 않은 말을 줄줄 늘어놓으면서 말땀의 주도권을 잡아갔다.

  기름이 지글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고기 익는 냄새가 고소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병학이를 바라보았던 나와 수영이는 병학이 곁에 앉아서 얌전한 강아지처럼 병학이의 말땀을 타고 있었다.

  기름이 지글거리는 꽃뱀 토막을 타지 않게 돌려놓는 병학의 손놀림. 침이 꿀꺽 넘어갔다. 수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짜식은 먹어보라는 말도 안 하고 뱀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추접스러운 놈이 남이 뭘 넘는데 쳐다보는 놈이라고 해대면서 혼자 냠냠거렸다.  

  “야, 한 토막 줘봐.”

  참지 못하고 내가 말을 했다. 수영이는 다짜고짜 뱀고기 토막을 집어들었다. 놀장놀장하게 익은 꽃뱀 토막은 정말로 고소했다. 기막힌 닭고기 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여지껏 몰랐냐는 듯이 수영과 나는 꽃뱀토막을 지범거렸다.

  다음번엔 돈 주고 사먹자고 누가 제안을 했다. 여름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늑실늑실 말 안 들어처먹는 막둥이처럼 맘 놓고 늑실거리며 세월아 갈 테면 가라! 먹고 마시고 싸고 읽고 졸았다.

  밤이면 하늘에 별들이 더 이상 뜰 수 없을 만큼 떠서 반짝였다. 한 뼘 간격도 없이 촘촘하게 짜여진 별의 그물망 속에 풍덩 뛰어 들어가서 우리는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전주는 시내버스가 파업을 해서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뉴스를 들을 때도 김대중 씨가 해금되었다는 고무적인 소식도 우리에겐 실감이 없었다.

   “야 실상사 앞 계곡물에 고깃병을 놓자. 물고기 매운탕은 자신 있다.” <다음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출처: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594

[2019-03-29 22:45:44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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