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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13. 그해 여름 3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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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13. 그해 여름 3


그해 여름 3


  짜식들의 눈빛은 설마 꽃뱀 토막보다 맛있으려고? 하는 눈치였다. 내 음식 솜씨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더 그럴 거였다. 하지만 내 표정이 불쌍해보였는지 마지못해서 그러자는 투로 따라나섰다. 저녁참에 병을 놓고 아침에 걷어 올리거나 아침참에 병을 놓고 저녁참에 걷어 올리는 것이니 이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우리들의 조바심은 다음 날 아침 탄성으로 바뀌었다. 비닐 고깃병 두 개에 한 냄비는 족히 될 피라미들 붕어새끼들이 팔딱거렸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배를 따서 집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아까운 신 김치를 코펠 바닥에 깔고 고춧잎만 한 붕어새끼들 피라미들을 얹고 그 위에 고추장기 된장기를 했다.

  바글바글 매운탕이 끓기 시작했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10여 분 더 다갈다갈 지지고 난 뒤 마늘 다진 것과 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아직도 바글바글 끓고 있는 매운탕 뚜껑을 연 순간 우리 셋은 그야말로 밥도둑이 되었다. 맛있다고 뭐라고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말도 안 하고 막 퍼먹었다.

  물고기들이 헤엄칠 정도로 물만 왕창 잡은, 고추장맛으로 간신히 체면을 세운 매운탕이었지만 금방 바닥이 났다. 매운탕에 곁들인 밥맛이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매운탕국물에 밥을 먹는지 밥에 매운탕을 먹는지 분간이 안 갔지만 눈 깜박할 새에 밥공기가 비워졌다. 쌀 걱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우리는 물고기 추렴하려고 작심한 놈들처럼 아침저녁으로 실상사 앞 냇가를 얼쩡거렸다. 시도 때도 없이 여기를 얼쩡거린다고 해서 누가 안다리 후리듯 덤벼올 리도 없었다. 실상사 앞을 차지게 휘도는 냇물은 우리 발걸음을 이젠 안다는 듯이 아침저녁으로 꼭 한 냄비만큼씩 물고기들을 내줬다.

  앞집 방위병 집에서 매운탕 끓이는 냄새를 맡았는지 군둥내 묻은 묵은지 한 포기 주고 갔다. 우리 입이 쩍 벌어졌다. 이 묵은지야말로 매운탕을 매운탕답게 하는 최고의, 최후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침에 배 딴 것들을 소금 뿌려 햇볕에 말리고 저녁참을 기다렸다. 저녁참에 걷어 올린 것들과 합해서 매운탕다운 매운탕을 끓이기로 했다. 요번엔 물고기들이 헤엄치다 만 매운탕이 아니었다. 탕 끓일 재료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의 물고기가 준비될 것이었다.

  주머니들을 털어서 양념도 제법 갈무리해 뒀고 소주도 다섯 병이나 샀다. 저녁참에 피라미들 붕어새끼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깃병 속에서 팔딱거렸다. 물고기 두 냄비거리가 솔찬하니 이제 묵은지 넣고 끓이면 되는 것이었다.

  땅거미가 지고 큰 코펠에 국물이 다갈거리기 시작했다. 묵은지 익는 냄새가 뱃구레를 꼬록거리게 했다. 수저를 들고 때를 기다리는 내 자랑스러운 두 친구는 밥도 안 푸고 매운탕 뚜껑만 바라봤다.

  매운탕을 상위로 올렸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우리는 허천들린 듯 탕을 먹어댔다. 소주병이 금세 비워졌다. 매운탕을 안주 삼아서 밥과 소주를 먹는 게 아니라 매운탕과 소주가 주식이고 밥은 반찬이 되어서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되었다.

  밤하늘에 별이 더 이상 뜰 자리가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보름에 가까워지는 달이 산마루에 뼘가웃 올라붙어 있었다. 매운탕은 식어갔지만 술자리는 흥청흥청 달아올랐다. 코스모스가 핀「고향역」으로 목을 푼 뒤「새타령」으로「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녹슬은 기찻길”이 뚫리고 있었다.

  황혼에 바닷가에 ‘좆 단배’를 가만가만 노 저어가며 뒷걸음치듯 들숨 날숨을 땅바닥에 내려놓다가도 냉큼 되돌아서서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어떤 노래가사의 과대망상증을 물어뜯듯 목타루가 격렬해지고 있었다.

  문병학 레파토리로 막 돌아가는「황성옛터」에 휘영청 뜬 달이 흐붓한 빛을 맘껏 뿌리고 두만강에 삼수갑산에 소쩍새가 피 토하듯 자지러지는 그 사이에도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을 파대며 저절로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건 병학이었다. 우물로 물 뜨러 간다더니 수대에 물은 안 떠오고 손에 뭘 한 움큼 쥐고 돌아왔다. 그게 뭐냐고 물어도 짜식은 대답이 없이 대뜸 그것을 매운탕 속에 집어넣었다. 이거 넣으면 매운탕이 더 맛있을 거라고 우리의 입맛을 돋웠다.

  코펠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탕이 끓면 끓수록 이상한 냄새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 냄새쯤이야 우리들 먹성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없어서 못 먹는 물고기 매운탕 아닌가 말이다. 나는 수저로 매운탕 국물을 떠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입엣것을 토방에 뱉어냈다. 그거 넣으면 더 맛있을 거라더니 그 냄새는 속엣것들도 죄다 토해버릴 만큼 비위가 상했다. 오만 인상을 다 쓰면서 아까 탕에 넣은 게 뭐냐고 물어봤다. 짜식은 ‘잼피’라고 했다. 아주 귀한 향료라고, 자기네 동네에선 이것을 김치에도 넣어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냄새조차 싫었다.

  숟가락을 딱 놓고 나는 상 뒤로 물러앉았다. 수영이도 물러앉았다. 병학이는 별 촌놈들을 다 봤다는 듯이 냠냠거리며 매운탕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아예 국그릇에 탕을 덜어서 밥을 말아먹었다. 아아, 너 다 먹어라. 수영이와 내 여름방학도 너 다 가져라.

  물고기 매운탕에 묵은지가 얼마나 귀한 줄 아는 놈이 이럴 수는 없다. 잼피가 도대체 뭣 하는 짜장이란 말이냐. 소설책 몇 권 읽은 것도 시 몇 편 끄적거렸던 것도 밤마다 목청 돋웠던 행복한 순간들도 어디로 다 도망가버렸다.

  복수를 하리라. 밥 당번도 안하고 국도 안 끓이고 몇 끼니를 맨입으로 삐대리라. 짜식이 배알 꼴려하는 짓만 골라서 하리라. 흥? 네가 박성자랑 언약식을 한다고? 지난 초여름에 내 인연을 박살낸 놈 문병학.

  나를 갖잖네엄마 아들로 만들지를 않나, 내 인연을 박살내지를 않나. 그렇게 나를 외톨이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제 여자 친구 박성자가 모나지자 같다고 그렇지 않냐고 염치도 좋게 내 속을 긁었던 놈.

  혼인식도 약혼식도 아닌 언약식? 그것의 문화적 정체성은 도대체 뭣이란 말이냐. 거기에 안 가리라. 축하봉투도 안 하리라. 갖잖네엄마 아들의 뒤끝이 얼마나 독한지 톡톡하게 보여주리라. 그러나 그런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채수영과 나만 밑지는 것 같았다.

  인간 문병학이는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야덜아, 한번 먹어보랑게잉? 아따 맛시따, 어여 뽀짝 와서 먹어보랑게잉?”

  약올리면서 그 귀한 묵은지매운탕을 혼자서 몽땅 먹어치웠다. 우리는 얼빠진 꺼병이가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이병초 시인


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599


[2019-04-01 18:00:4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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