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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타박타박15-3. 내 인생에 생강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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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내 인생에 생강-<이현옥의 타박타박>


* 편집자주 : <이현옥의 타박타박>은 일단 이번 글로 마무리됩니다. 2021년 1월 18일에 연재를 시작해 1년동안 애쓰셨씁니다. 잠시 충전하신 뒤 다시 새로운 글로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34년동안 도서관지기로 수고하샜습니다. 정년을 축하드립니다. /



생강을 캘 무렵이거나 다 캐고 난 후면 리어카에 엿을 싣고 엿장수가 드나들었다. “엿 사려, 엿 사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엿 사려~~”, “놋그릇 찌그러진 양은그릇 생강도 받아요. 생강~~”

어른들이 주로 멀리 있는 논밭에 가서 일하는 시각에 맞춰 오는 것 같았다. 중간 중간에 추임새처럼, 마지막은 길고 크게 한껏 고조된 가위질로 장단을 맞추는 소리가 청아한 하늘 아래 울려 퍼지면 우리들의 목구멍에서는 꼴까닥 꼴까닥 침이 몇 번이고 넘어갔다.

그 유혹을 견디다 못해 결국은 일을 내곤 하였다. 생강 밭에 몰래 들어가 잘 여문 생강을 뽑아서 엿과 바꿔 먹고 말았던 것이다.

엿장수가 나타나기 전에 나는 이미 망을 봐 두었었다. 생강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곳은 건드리면 안 되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에서 한두 뿌리 캐내면 들키지 않으리라 눈독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생강을 캐는 날 어른들이 바쁜 틈을 타서 생강이 몽땅 굴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두어 뿌리 슬쩍 숨겨 놓을 때도 있었다. 쓸모가 없어져 버려질, 두엄으로 쓰려고 쌓아 놓은 생강대(줄기와 잎) 속에다가 말이다.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면서, 그 생강대를 누군가가 밟아 숨겨 놓은 생강이 달싹 부러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있다. 내일부터 당장 생강 이시락(이삭)을 주우러 다녀야 한다. 그놈의 엿장수들은 생강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부모님 몰래 생강 굴에 들어가 생강을 꺼내 오기를 어린 우리들에게 종용했던 것도 같다.

앞서서 나는 강수를 넣은 요리법에 대하여 대충 설명하였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아, 요리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렇다. 밑반찬 중에서도 강된장에 속한다고 해야 옳을 성싶다.

어찌되었든 우리 가족은 해마다 거르지 않고 자주 먹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이 반찬은 먹을 것이 마땅히 없을 때 밥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시집 온 이후 이 생강대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체득된 이 반찬을 일 년에 한두 번 연례행사처럼 만들었다.

특히 남편이 잘 먹어줬다. 향이 좋다, 굉장히 독특한 맛이라며 따뜻한 밥에 넣고 비벼 먹곤 하였다.

여름이 지나고부터는 생강 잎이 무성해 지기 시작한다. 가급적이면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에게 생강 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단속을 했다. 항상 당신이 들어가서 연한 생강대를 똑똑 따가지고 오셨다.

그것을 약 1cm 크기로 쫑쫑 썰어서 된장과 다진 마늘, 파 그리고 마른 멸치가 있으면 똥을 따 부셔 넣고 뜸 들이는 밥 위에 올려 쪄 먹었다.

올해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이 반찬을 만들지 못했다. 가능하면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자고 다짐했었는데… 왠지 껄쩍지근했다.

서리 내리기 직전 찬바람 불던 날 생강 캐는 현장을 목격한 나는 염치 불구하고 생강대를 한 주먹 얻어 왔다. 버려진 생강대를 아무리 뒤져도 여린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너무 질겨져서 과연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속을 셈 치고 가져오고 말았다.

이제 나는 이것을 밥 위에 올려서 찌지 않는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거나, 멸치를 살짝 볶아 잘게 썰어 넣기도 한다. 표고버섯도, 우렁도 함께 넣어 자글자글 졸인다.

이번에는 억센 생강대라서 청국장을 한 수저 넣어 봤다. 생강대는 이내 부드러워졌고 더 구수한 맛이 났다. 냉동실에 잘 보관해서 반찬 없을 때 꺼내 놓으면 남편은 이마에 땀을 닦으며 달게 먹을 것이다.

아, 편강 얘기를 빼먹을 뻔 했다. 바지런한 동네 친구 ‘이복주’는 얼마 전 나에게 손수 만든 편강을 한 봉다리 안겨 줬다. 손이 많이 가는 수제 편강을 말이다. 나는 어머니께서 편강 만드는 일을 도왔기 때문에 이 일의 번거로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편강의 굵기가 아주 얇고 일정하기에 대패로 저몄냐고 물었더니 요새 세상에 대패질이 다 무엇이냐, 대패 구경한 지 오래 되었다, 남편이랑 두세 시간 칼질했다, 어깨가 빠지려고 한다, 불 앞에 서서 오랫동안 졸였더니 다리도 아프다. 지친 기색이 또렷하다.

지금도 생강 농사를 짓고 있는 언니가 갖다 준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복주의 수고 덕분에 올 겨울 나에게는 간식거리가 생겼다. 고마울 따름이다.
                
농한기가 되면 어머니는 옥구군 임피로, 화산면 종리로 생강을 내러(팔다, 사다가 늘 헷갈렸음) 가셨다. 돈을 얼마나 벌어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때는 머리에 이고 간 생강보다 많은 양의 곡식(한 됫박의 찹쌀, 수수 등)이나 마른 고추, 고구마, 심지어 목화도 가져오셨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집에 필요하거나 모자라는 식재료 또는 여러 물건들과 물물교환을 한 것이다.

어머니는 임피로 생강을 팔러 가시면 사나흘 정도, 종리로 가실 때는 이틀쯤 지나야 돌아오셨다. 어머니가 집을 떠난 이튿날부터 나는 대문 밖을 서성였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논밭두렁에 나타나실까 내 눈은 빠질 것만 같았다. 낌새가 보이기만 해 봐라 한 달음에 달려가서 어머니를 반기리라. 몇 번이고 발뒤꿈치를 치켜 들고 장터 쪽을 내다보곤 하였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 본 동네 사람들 몇몇은 나에게 머리를 긁어보라고 하셨다. 내 손이 머리 뒤통수에 가 있으면 이틀 후에나 어머니가 오실 것이므로 어서 들어가라 하셨고, 이마 근처를 긁적이면 오늘 해지기 전에 올 것 같다며 환하게 웃어줬다.

그분들의 얘기가 다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을 붙여줄 때마다 나는 안도의 들숨과 날숨을 쉬곤 하였다. 어머니가 그렇게 번 돈과 바꿔 온 물품으로 토방 위에 놓인 검정고무신들은 커 나갔다.

어머니는 누가 뭐래도 생강전문가가 분명했다. 텃밭을 팔아넘기기 전까지 30년 이상을 생강 농사로 연명하셨으니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의 생강 사랑을 은근히 폄하했었다.

내가 혼인하고 우리 아이들을 돌봐 주기 위해 시내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가끔 신발장 안에서 검정 비닐이 눈에 띄곤 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봉동에서 얻어 온 생강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검정 비닐에 넣어 신발장 맨 아래 겨우내 보관하셨던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손으로 더듬기만 해도 굳이 그것을 풀어보지 않아도 안다. 익숙한 촉감에 나는 웃는다. 그리고 비웃는다. 씻어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편리할 것을, 어머니의 생활의 이력과 편린들을, 문명의 이기가 서툰 그 분을 나는 무시했다.

그렇다. 그 얄미운 교수는 봉동 사람들은 생강자루로 부모를 내려친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듯 싸가지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나도 물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어머니가 남부끄러웠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생강 보따리를 머리에 인 어머니가 장터 길목에 나타나면 나는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허름한 저고리 아래 낡고 삭아서 입으나마나 한 메리야스, 겨우 가슴만 가린 그녀를 나는 외면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내 어머니가 아니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모를 것이다.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도 자식들의 어미가 되었다.  <끝>



                
글쓴이 이현옥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동안 재직했으며, 이번 달 2021년 12월에 정년을 하게 된다.


전북포스트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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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268






[2021-12-06 22:07:41 에 등록된 글입니다.]


김경운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이야기들도 또 기대돼요~~ *^^* 2021-12-06
22:08:39

 


김정순
따뜻하게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딴소린데.. 저도 우석대 다닐때 강복주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이 촌스럽다고 싫어했습니다, 저도 정순이고요^^ 그래서 강이슬, 김이슬 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2022-01-09
15: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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