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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정(出征) 3(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작성자 : 김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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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오피니언이병초의 역사소설

1. 출정(出征) 3(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1. 출정

<3-2>

그러나 무엇이 급했는지 이 사건 수사의 전권을 가진 서인의 정철과 그의 일파는 동인들을 죽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3년여에 걸쳐 1천여 명의 동인계 학자들이 학살당했다. 영남 지역의 유생도 포함되었다고는 해도 학살당한 지식인들은 주로 전주 사람들이었고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이 사화(史禍)는 조선 역사는 물론 한민족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참살(慘殺)이었다.

군왕 선조가 서인들이 자행한 이 학살극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이지 뒷짐만 지고 있었다. 어쩌면 선조는 당나라 태종 때 오긍(吳兢)이 지었다는 『정관정요』(貞觀政要)를 알고 있을 터였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분권과 내투, 장징, 환계, 불측 등의 방법론을 조선의 정치 현실에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기축옥사의 참상을 떠올린 이순신 장군의 표정은 침통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는지. 결코 두둔하고 싶지 않지만, 더는 입에 올리고 싶은 이름도 아니지만, 송강 정철(鄭澈)- 그는 어째서 동인 백정이 되고 말았는지. 그때 또 한 차례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가 전라좌수영을 울렸다.

“장군, 출정해 주시옵소서. 경상우수영의 바다를 지켜주시옵소서!”

4월 18일에 한양에서 출발하여 23일에 경상우수영에 도착한 이영남. 원균이 육지에서 싸우겠다고 하면서 함선과 무기를 버리려고 하는 것을 만류하고 이순신과 협력하여 같이 바다에서 싸우자고 역설한 이영남. 그리고는 24일에 이순신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출정을 승낙할 수 없었다. 군왕이나 전라관찰사, 경상관찰사의 허락 없이 병력을 이동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전라도 관찰사 이광과 경상도 관찰사 김수 등에게 출정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출정해서 경상도 바다를 지키겠다는 서장(書狀)을 보낸 상태였다. 그러면서 이영남이 행동을 보기 위해서 모른 체하고 있었다. 이영남은 24일, 25일에 연거푸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을 오가며 이순신의 출정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마침내 회의를 열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출정을 다짐한 터였다. 청병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려 여섯 번이나 다녀갔고 사흘간 통곡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이영남의 충정을 더는 모른 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휘하 장수들의 의견을 먼저 듣는 게 순서였다. 왜구의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들 최전선(最前線)에서 병사들과 함께 생사를 마치기로 작정한 장수들의 전략이 전투의 승패를 쥐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휘하 장수들은 이영남의 말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한 지역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조선 전체의 판세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조선의 군대 전체에 만연해 있는 왜구에 대한 두려움과 이미 만연한 패배주의를 떨쳐내야 하는 계기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게 주된 의견이었다. 전라좌수영의 판옥선과 이억기가 이끄는 전라우수영의 판옥선이 합세하고 여기에 경상우수영의 판옥선이 몇 척이라도 가세한다면 승산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때 소식이 당도했다. 1592년 4월 26일, 전라좌수영의 군함과 군사를 이동해도 좋다는 좌부승지 민준의 서장(書狀)이 도착한 것이었다. 장군은 4월 27일에 좌수영내에 있는 모든 군사를 4월 29일까지 모이라고 지시했다. 첫 출정. 드디어 전라좌수영의 판옥선들이 전장에 나가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훈련만 해온 병사들에겐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올 터였다.

1591년, 임진왜란이 터지기 한 해 전에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1590년 3월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조정에서는 황윤길과 김성일, 허성, 이들을 보호하는 무관 황진 등을 일본에 보냈다. 이들은 일본에서 1년여를 머물다가 1591년 3월에 귀국하였다. 서인이었던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을,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일본은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조정은 서인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김성일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저정에서는 만약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뛰어난 장수들을 전방에 배치시키고 전쟁을 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도 이때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이순신은 앞일을 예견이나 했다는 듯이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왜적은 곧 조선을 침범할 것이다, 그들은 조총이란 신무기를 가진 데다 백병전에 능하다, 이런 왜적과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함포사격이 가장 주효하다 등등의 얘기를 뒷받침하는 전술 훈련에 임했다. 왜적이 가진 안택선은 노를 젓는 노꾼이 90명이었고 전투원은 200명이었다. 판옥선은 노꾼이 110명이었고 전투원은 지휘관까지 포함하여 54명에 불과했다. 왜적 안택선의 전투원은 근접 전투원인 반면에 판옥선의 전투원은 포격수 36명에 궁수 18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포격전과 원거리 공격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시켰다.

이순신 장군은 전술 훈련에 박차를 가했었다. 왜구들에게 조총이란 신무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총알이 송판 5센치를 뚫지 못한다는 점, 왜구의 전선(戰船)엔 포가 2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도 전술 훈련에 도움이 되었다. 판옥선의 송판은 적어도 15센치였으니 함포사격만 제대로 된다면 절대로 조선 수군이 밀릴 전투가 아니라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조선 수군 중 가장 약체로 뽑히는 데가 전라좌수영이었다. 5관 5포에 판옥선이 24척에 불과했다. 관은 고을이고 포는 포구나, 항만, 기지를 가리키는 말인데, 원균이 수사로 있는 경상좌수영은 8관 16포에 판옥선이 50여 척에 있었고, 박홍이 수사로 있는 경상우수영은 18관 16포로 판옥선만 무려 70여 척이었다. 그러나 임진년 4월 왜구가 침범하자마자 경상좌수사 박홍의 수군은 지리멸렬했고 경상우수사 원균 또한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했다.

1592년 5월 4일 이순신 장군은 출정 명령을 내렸다. 전라좌수영 군사들은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면서도 자신이 서야 할 자리가 마땅히 최전선임을 받아들였다. 조선의 안위를 자신들 어깨에 짊어졌다는 각오로 판옥선에 승선했다. 지금까지의 훈련이 실전에 대비한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전라우수영 이억기의 수군이 오지 않아 이순신 장군은 단독으로 출정했다. 경상우수영 원균의 수군과 만나기로 한 당포로 출정한 것이었다.

전라좌수군은 5월 6일에 통영에서 원균의 큰배 4척과 중간배 2척과 합류했다. 5월 7일 가덕도로 진격, 옥포에 이르렀다. 조선 수군은 사거리를 확보하고 화포를 쏘아 왜선들을 격침시켰다. 왜선이 추격하면 후퇴하는 척하다가 그 자리에서 방향을 직각으로 꺽어 다시 화포를 쏘아 침몰시키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사거리가 긴 화포의 공격에 왜선들은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수군은 왜선의 접근을 일절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군들은 백병전에 능해 판옥선에 도선하게 되면 그 배를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왜군들 진영은 아수라장이었다. 진을 갖추기도 전에 화포 공격을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여기에 사정없이 날아드는 애깃살. 왜적이 부지기수로 죽어 나갔다. 왜선들이 형편없이 깨졌다. 시간이 갈수록 전투는 완전하게 조선 수군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영남은 멀찍이서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았다. 순간 왜선 한 척이 이영남의 배에 붙었다. 일본군은 이영남의 배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조선 수군들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노꾼들이 노를 한 개씩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왜군 20여 명과 장수 한 명이 배에 올라왔다. 이영남은 수군들을 독려하여 편전을 날려 15명을 죽였다. 하지만 5명의 왜군이 너무 가까이 와서 활을 쏠 수 없었다. 이영남이 선두에 섰다. 자기도 무과에 급제한 장수이며 칼이라면 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영남은 모악산인에게 배운 대로 한명 한명 왜군의 목을 베었다. 마지막으로 왜군 장수와 마주 섰다. 겉으로 보기에도 왜군 장수의 검술은 높아 보였다. 그가 닛본도를 치켜올렸다. 왜군들 특유의 내리치기 기술을 시전하려는 것 같았다. 순간 파도가 배의 옆구리를 때렸다. 배가 출렁였다. 이영남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일본군 장수의 닛본도가 번개같이 내려왔다. 이영남은 그 칼을 피할 수 없었다. 가슴이 화끈하였다.

영남은 쓰러졌다. 이때 노를 든 누군가가 일본장수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 보였다. 영남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영남은 가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슴이 하얀 천으로 온통 감겨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왜군 장수의 닛본도에 가슴을 맞은 데가 화끈거렸다. 이곳이 지옥인가 현실인가. 출렁임이 없다. 그러면 여기는 육지란 말인가.

가슴 부위에 손길이 느껴졌다. 붕대를 갈아주기 위해서 푸는 것 같았다. 손길이 투박한 사내의 것이 아니라 아녀자의 손길이었다. 누구일까. 여기는 어디일까. 이영남은 눈을 뜨고 붕대를 감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아침이슬을 물고 있는 얕은 분홍색 꽃잎 같았다. 춘추시대 진(晉) 헌공(獻公)의 애첩 여희(麗姬)의 미모에 놀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었다던가. 왕소군의 미모에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날개짓하는 것을 잊어 땅에 떨어졌다던가. 침어낙안(沈魚落雁)의 주인공들보다 예뻤다. 전주에 있는 장씨 부인도 예뻤으나 이보다는 못하였다. 여인의 손길은 따뜻하고 찬찬했다.

이영남은 여인에게 어디에서 의술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여인네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말이 없었다. 이때 한 권관이 영남에게 문병을 왔다. 그는 다행이라는 눈빛을 보였다. 영남도 빙그레 웃어주었다. 영남은 권관에게 자기가 쓰러졌을 때 노를 들고 일본군 장수의 뒷머리를 때린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권관은 김대수라는 노꾼이라고 말하였다. 말이 없던 순옥은 대수가 자신의 오빠라고 하였다. 오빠가 특별히 간호하라고 부탁하여 이영남을 간호하였다는 것이다.

이영남은 3일을 병상에 있었다. 병상에 있으면서 자기가 왜 칼을 맞게 되었는지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여러 번 되짚어봐도 자기의 검술이 왜군 장수를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배에 있었다. 이영남은 땅에서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왜군 장수와 마주 선 곳은 배 위였다. 배가 출렁이는 순간 중심을 잃었고 그 때문에 칼을 맞은 것이었다.

이영남은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김대수의 부축을 받으며 배에 올랐다. 그동안 김대수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김대수의 말본새는 노꾼의 본새가 아니었다. 어떤 말을 하든 앞뒤가 딱 들어맞게 말을 했다. 수군의 노꾼은 천민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김대수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결코 천민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김대수는 이영남에게 배에서 균형 잡는 법을 알려주었다. 자기는 2년 전부터 좌수영의 수군에 배속된 노꾼으로 있으면서 균형 잡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영남은 김대수에게서 균형 잡는 법을 배우고, 배 위에서 칼을 쓰는 법을 배웠다. 아울러서 화살을 날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새로이 배웠다. 이영남은 김대수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 물었으나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행동거지며 말하는 본새며 그는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이영남이 무심결에 내뱉는 어려운 말들도 김대수는 알아듣고 쉽게 그런 말을 하곤 하였다. 분명 양반집 자제였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전라좌수영은 축제 분위기였다. 권관들과 병사들은 배불리 밥과 술을 먹고 흥청거렸다. 첫 승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1차 출정이었던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왜선 42척을 격파했다.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이영남은 소비포 권관의 직책으로 참전하여 1척의 배를 지휘를 맡았다. 이순신 장군이 이뤄낸 23전 23승이라는 기적적인 승리의 첫 번째 장이었던 옥포해전, 이 전투가 전의인(全義人) 이영남의 통곡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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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포스트 http://m.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818






[2022-04-11 09:32:59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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