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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남루 껴안는 따뜻한 시선 - 강연호 (원광대 문창과 교수,시인)
작성자 : 관리자 


요즘 들어 어느 때보다 다양한 시적 경향들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큰 시편들 보다는 일상적 삶의 세목들에 대한 관찰의 시편들이 주목받고 있다. 거덜난 나라 살림과 아이엠에프 한파 속에서 한참 유행하는 말처럼, 시적관심도 이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애초에 시의 시대에 대한 믿음이 헛것이었다면 일상의 삶에 대한 세심한 천착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삶의 비의를 포착하고 존재의 남루를 껴안는 것, 시를 포함하여 문학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양 시인의 새 시집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창작과비평사)를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에서 우선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은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소박하고 넉넉하게 자신의 삶과 이웃을 돌아보는 시인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시집에서 지나온 삶의 신산스러움이나 분노, 혹은 그리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 내면에서 녹여내는 자세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항용 연륜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연륜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시인의 육체적 나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집에서 화자는 '버스 안에서 깜박 졸다가' 적막한 '저승길'을 훔쳐보기도 하고 (토막잠)창문을 닫았는지 출입문은 잠궜는지 건망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건망증1), 한편으로는 아직 '물정도 모르고' 산다고 (물정모르는) 짐짓 너스레를 떨기도 하며, '가릴 것을 제대로 못 가리고/ 낯도 안 붉히고 나는 늙는다'(<낯도 안 붉히고>)고 자책도 한다. '나이 들수록 속절없이 산천은 곱다'(<봄나들이>)는 구절은 지나온 삶에 대한 쓸쓸한 회고를 그야말로 속절없이 드러내준다고 하겠다.그렇지만 연륜은 말의 엄격한 의미 그대로 육체적 나이만으로는 얻어질 것이 아니다. 삶의 무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깨달음을 동반해야 비로소 연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시인은 과연 '고통과 진실의 끝'이나 '목숨과 그리움의 끝'을 가늠해보기도 하며,(<조약돌 하나로>) 혹은 아직도 '절망과 자유와 그리움의 혼숙'의 시절을 되살리고 싶어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한다.(<캄캄한 뼛집도 없이>) 개를 다 팔아치운 뒤 혼자 저울에 올라 무게를 재는 개장수의 '마지막 무게가 / 저울추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무게>)는 정황묘사는, 해학적 어조와 익살을 동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진지한 무게를 요구하는 시인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의 제목이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인 이유를 여기서 되새길 수 있다.


이러한 성찰과 깨달음을 통해 시인은 세상살이의 지난함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내면으로 견뎌낸다. 그 견딤의 자세는 '뻔뻔해진 이 세상을 나는 견뎌볼 참이다(<무난골>)라고 직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또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곰삭은 인정에 스스로를 동화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령 산토끼 추렴을 하며 동네 사람들이 '피차 견딜 만한 말투'로 서로 하대를 하는 자리에서 '빈 속에 주는대로 받아마신 소주가 / 나도 아직은 견딜 만한'(<산토끼탕>)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시집의 많은 작품들은 시인 자신과 이웃들의 사소하고 허름하면서도 따뜻하고 넉넉한 일상을 별다른 수사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얼핏 그의 작품들이 소박한 만큼 단순하게 읽혀질 수도 있지만, <落花>와 같은 작품의 수일한 표현은 쉽게 엳여질 것이 아니다.

     담배 떨어진 봄밤 / 창 밖에 / 살구꽃 진다

     / 불을 꺼버려도 / 드러누워도 온 세상에 / 담배도 굶은

     / 살구꽃 진다 <落花>

  담배가 떨어진 화자와 살구꽃 지는 봄밤의 정경은 그야말로 흔한 일상의 세목이지만, 이 시행에서 묻어나는 쓸쓸한 적막은 시인의 깊은 사유와 눈 밝은 응시를 짐작하게 해준다.

  정양 시인의 새 시집은 주변 일상의 삶을 통해 존재의 남루를 포착하는 시적지향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신과 이웃의 고만고만한 삶을 그려내고 있지만,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넉넉한 울림을 간직하고 있다. 요즘 같이 수 많은 시쓰기의 전략이 명멸하고 있는 형편을 감안하면 어쩌면 지나치게 담담하고 작은 목소리라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때로 독자들조차 당황시키는 큰 목소리의 허황스러움보다는 삶의 저변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낮은 전언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일상의 삶 속에서 존재의 남루를 껴안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더욱 깊고 그윽해지기를 바란다.


[2006-11-22 22:31:0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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