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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그레이드 된 촌말의 담담함과 여유로움 - 2001년 1월 <문화저널 서평>, 오하근
작성자 : 관리자 


   정 양 시선집 <눈 내리는 마을>이 후천년의 1년 새해의 밝음과 함께 나왔다. 이 시인은 전천년의 68년에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니 시력(詩歷)30년만에 시선집을 발간한 것이다.

  그는 7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기도 했으며 그 동안 <까마귀떼>(80) <수수깡을 씹으며>(84) <빈집의 꿈>(93)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97) 등 네 권의 시집을 출판했다. 이 시선집은 이 시집들에서 가려뽑고 거기에 최근에 쓴 몇 편을 덧붙인 것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게 하고 싶어서 이 선집을 엮는다. 지우고 말 고치고 줄 바꾸고 더러는 제목까지 바꾸면서 추려낼 것들을 추려보았다"고 쓰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허울이 있기에 그는 이미 발표된 시를 다시 퇴고했는가. <난로 앞에서>를 예로 살피기로 한다.

   퇴근시간 지난
   식어가는 난로 앞에 앉는다

   (생략)

   작년에도 이맘때쯤 그렇게도 눈 내리고
   사람도 사람들도 보고 싶더니


   (생략)

   서랍 속 휴지를 털어
   식은 난로에 불을 지피면

   (생략)

   묵은 시간들이 불붙어
   기억의 마른 살가죽에
   타오르는 불꽃

   (생략)

  이 작품은 가장 많은 퇴고가 이루어진 시이다. 먼저 보이는 것이 마침표의 생략이다. 이뿐 아니라 이 시인의 전부의 작품에 마침표가 없다. <수수깡을 씹으며> 이후에 마침표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시가 글쓰기라기보다 말하기의 일종이라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시는 하고 싶은 말을 그 즉석에서 뱉는 민중의 언어이지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서 거짓이 섞이는 선비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언어를 다듬고 또 다듬는다. 이렇게 다듬어서 시는 행이 나누어지고 연이 나누어진다. 행이 쉼이고 연이 맺음이다. 그런데 구태여 마침표를 찍어 또 못질할 필요가 없다. 이 쉼과 맺음을 하면서도 시의 말은 물이 흐르듯이 촌놈이 지껄이듯이 밑도 끝도 없이 죽죽 이어져야 한다. 역사도 그렇게 이어지고 그렇게 흘러간다. 이것이 이 시인의 시집에서 마침표가 사라진 이유인 듯싶다.

  그의 시작품에는 마침표뿐 아니라 물음표도 말없음표도 없다. 구차스럽고 부자연스럽게 이런 문장부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말하기를 할 수 있다는 여유로움과 담담함이 이의 쓰임을 사양했을 것이다.

  '작년에도 이맘때쯤 그렇게도 눈 내리고"의 1행은 원래 '작년에도 이맘때쯤/그렇게도 눈 내리고'의 2행으로 되어 있다. 2행이 1행이 된 것이다. 이 작품 말고도 상당수의 작품들이 시행이 축소되어 이 선시집에 수록되었다. 시가 산문과 다른 점은 그 형태상 행가름에 있다. 시는 산문보다 느린 템포의 언어이다. 산문은 죽죽 말하지만 시는 행의 끝에서 쉬고 다음 행에서 다시 시작하는, 쉬엄쉬엄 말하는 언어이다. 다시 시작하는 다음 시행의 첫 어휘는 강조되어진다. 이 작품에서 이 시구가 원시처럼 2행으로 되었다면 '그렇게도'에 강조점이 놓여 '도대체 얼마나 눈이 많이 왔기에'라고 우리를 감탄하게 유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작품은 이 강조점을 버렸다. 감탄이 지나치면 수다스럽고, 강조가 지나치면 허사가 된다. 이 거친 삶을 살면서 그는 놀람을 진정시키고 이를 내적성찰로 다스릴 수 있는 여유로움과 담담함을 얻은 것이다.

  "퇴근시간 지난/식어가는 난로 앞에 앉는다"의 '지난'은 원시에서는 '지나서'이다. 이 '지나서'가 '지난'으로 단지 한 어휘의 어미 하나가 바뀌면서 이 시작품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원시에서 퇴근시간이 지난 주체는 화자이고 식어가는 것의 주체는 난로이다. 그러나 이 시선집에서 형식상으로 퇴근시간이 지난 것의 주체가 난로로 바뀌었다. 그러나 난로는 식어가는 시간만 있을 뿐 퇴근시간이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이 퇴근시간과 식어가는 시간은 나와 난로가 공유하는 시간이다. 나는 난로가 되고 난로는 내가 되어 이 둘은 하나가 된다. 나는 난로 앞에 앉으면서 바로 내 앞에 앉는 것이다. 이는 자기성찰의 시간이다.

  "서랍 속 휴지를 털어"도 원시에는 "휴지처럼 쌓인 세월을 털어"로 되어 있다. '휴지를 털어' 불을 지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휴지처럼 쌓인 세월을 털어' 불을 지피는 것은 시인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시인은 시인되기를 거부하면서 우리 일상의 "사람도 사람들도보고 싶"어하고 우리 곁에서 우리의 일상언어를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역시 시인이다. 비록 우리와 같이 휴지를 태우지만 불 붙는 것은 '묵은 시간들'이다. '기억의 마른 살가죽에 타오르는 불꽃'인 것이다.

  그는 우리같이 우리의 촌말을 부리어 쓰고 있다. 그러나 '마른 살가죽'응 '기억의 마른 살가죽'이다. 다른 시작품에서도 이런 촌놈의 말은 업그레이드되어 긴장한다. '무슨 독한 맘 먹고 오늘은 볼 테면 보라고' 휘날리는 것은 벚꽃이고 '엉망진창으로 타오르던 것'은 진달래꽃이고 개나리꽃이고'태워먹는 것이 두고두고 꺼림칙'한 것은 토탄(土炭)이다. 이 시선집은 이렇게 우리 촌말을 업그레이드하여 긴장시키면서도 담담함과 여유로움을 쓰고 있다. 이것들이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이 시선집에서 벗어버린 허울의 결과이다.

  그는 지금까지 다섯권의 시집과 여러 권이 저서를 출간하면서도 남들 서너번씩 하는 출판기념회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촐한 자리라도 마련했으면 한다.


[2006-11-22 22:32:4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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