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洋의 홈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 - (현대문학 2001년), 남진우
작성자 : 관리자 


눈  길1

    흐린 하늘 밑
    들 건너 마을이 자꾸 멀어 보인다
    눈에 묻힌 길은 아예 잃어버렸다
    들판을 무작정 가로지른다
    발목이 아무 데나 푹푹 빠진다

    잃어버린 길 위에 까마귀 떼
    까마귀 떼도 길을 잃었나보다
    어디로 날아가지도 않고
    눈밭에 우두커니들 서 있거나
    느릿느릿 서성거린다

    길이 보여도 길을
    잃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길이란 잃어버리려고 있는 거라고
    구구구구 두런거리며 눈 덮인 들판을
    조금씩 비껴주는 까마귀 떼

    들끓는 검은 피에 취하여
    차라리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여는 까마귀를 따라간다
    또 눈이 오려는지
    먼 마을 연기가 낮게 깔린다

광막한 눈길을 헤매는 화자의 심사가 흑백의 선명한 대조에 의해 잘 드러나 있다. 길을 잃어버린 그는 어쩌면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는 길을 잃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길한 까마귀가 <눈길을 여는> 안내자로 변하는 것은 이런 깨달음이 있고 나서이다. 과연 까마귀를 따라간 그의 눈에 낮게 깔리는 <마을연기>가 들어온다. 모든 것을 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찾아지는 길이 있는 법이다.


[2006-11-22 22:33:16 에 등록된 글입니다.]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