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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산다는 것 - 2001년 여름 계간 시평, 오봉옥
작성자 : 관리자 



어금니

정양

    미당선생 고향에 묻히는 날
    어금니 뽑으러 나는 치과에 간다
    함께 조문 가자던 친지들이
    하필 오늘 뽑느냐고투덜거리며 전화를 끊는다

    투덜거리지들 마시라, 핑계가 아니다
    미당선생과 내 어금니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미당선생은 따뜻한 산자락에 묻히고
    내 어금니는 내 단골치과 피묻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소주병도 척척 까던 어금니였다
    미움도 절망도 야물게 씹어삼키던
    이 세상 험한 꼴들을
    이를 악물고 용서하던 어금니였다
    오랜 세월 시리고 욱신거리고 부어오르고
    악취 머금고 치과에 드나들면서
    뽑지 말고 어떻게든 살려보자던
    이제는 혀만 닿아도 캄캄하게 아픈 어금니

    욱신거리며 조문 가는 대신
    야물게 씹어삼킬 것들을 위하여
    이를 악물고 용서할 것들을 위하여
    이 세상 캄캄하게 아픈 것들을 위하여
    나는 이 어금니부터 오늘 꼭 뽑아내고 싶다

    차창 밖 눈녹는 겨울햇살이
    어금니 속에 시리게 꽂힌다


  어금니는 입 안의 맨 안쪽에 있는 크고 못생긴 존재이다. 앞니처럼 폼나지도 않고, 송곳니처럼 예쁘지도 않으며, 그저 넓고 편편한 얼굴로 딱딱하고 질기고 성가신 일들을 뒤에서 말없이 처리하는 존재이다. 화자의 어금니 역시 그런 존재이기에 '소주병도 척척 까던'존재, '이 세상 험한 꼴들을 이를 악물고 용서하던'존재,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 시리고 욱신거리고 부어오르는' 것을 참고 견디어온 존재, 결국 '단골치과 피묻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어금니는 '따뜻한 산자락에 묻힐' 미당선생과 대비를 이루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미당선생이 고향에 묻히는 날, 오랜 세월 캄캄하게 아파온 그 '어금니부터 오늘 꼭 뽑아내고 싶다'는 화자는 이 역사라는 것을 돌아보고 들여다보고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므로, 현재 안에 살아 있는 것이므로, 내 안에서 삭아서 새 생명이 된 것이므로 화자는 지금 그 안타까운 역사를 더듬어보고 올려다보며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어금니부터 오늘 꼭 뽑아내고 싶다'는 다짐 속에는 화자의 의지 즉, 바름을 지향하는 뜻이 담겨 있고, '이 세상 캄캄하게 아픈 것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에는 양이 아닌 음을 지향하는 마음, 옳고 그름이 어지럽게 얽힌 가운데서 될수록 옳은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 누림과 견딤이 뒤엉킨 세상에서 될수록 견디는 입장에서 함께 서고자 하는 마음, 급속도로 지냉되는 역사 속에서 될수록 함께 휩쓸려가지 않고 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 그래서 나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그것이 어금니 같은 존재들을 위로하는 마음이요,'캄캄하게 아픈 것들'을 뽑아내는 마음임을 이 시는 역설하고 있다. 그것이 또한 역사를 앎이요, 역사를 봄이요, 역사를 사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슬프다. 지나간 역사를 직시하고 있고, 오늘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직 이 땅의 현실은 지나온 날을 회개하고 반성하는 데에 인색하다. 아니 일부에서는 발빠르게 변화하는 오늘의 현실에 기대어 지나온 날들을 다 먹고 난 생선의 뼈다귀처럼 여기기조차 한다. 이것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우리는 지금 역사의 진행 속도가 대단히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현실이다. 내일은 또 도둑처럼 올 것이다.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세상이 갑자기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지 않는다. 어제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늘의 나에 철저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되고, 오늘의 나에 철저하지 않는 행위는 내일의 나를 바로 세우지 못할 근원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제의 나'를 돌아보아서 무엇 하느냐고, 사람들은 또 말한다. '어제의 나'를 들먹이는 당신은 얼마나 깨끗하냐고, 자기성찰에 익숙하지 못한 현실이다. <미당문학논쟁>이며 <언론개혁논쟁>이며 이 땅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논쟁들이 그렇게 지나간다. <미당문학논쟁>을 계기로 '어제의 우리'를 전면적으로 한번 돌아보자는 말들은 없다. <얼론개혁논쟁>을 계기로 '어제와 오늘의 언론'을 한번 들여다보고 그것이 얼론개혁의 계기로 삼자는 말들은 없다. 공격을 받으면 맞공격으로 대응할 뿐이다. 자신의 흠을 지적하면 상대의 흠을 까발리는 식으로 대응할 뿐이다. 이러한 현실 풍토에서 「어금니」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짐이 된다. 바른 것을 바르다고 하는데 그것이 슬프게 느껴지니 짐이다. 나아가 역사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으니 짐이요, 그 생명은 바름에 있고 바름은 또 오늘날의 자아를 바로 세우는 동력이 되는 것임을 아프게 지적하고 있으니 또한 짐이다. 청산하지 않은 역사를 끌고 가고 있으니 짐이요, 그런 화자의 다짐이 외롭고 처량하게 들리는 현실이니 또한 짐이다.

차창 밖 눈녹는 겨울햇살이/어금니 속에 시리게 꽂힌다

  이 시의 화자도 이미 그러한 현실을 알고 있다. 화자의 마음이 스며든 '겨울햇살'이 어금니에 따사롭게 비추이는 것이 아니라 '시리게'꽂히고 있으니 말이다. 화자의 마음은 이미 어금니 같은 존재에 있지만, 그 어금니(또는 어금니 같은 존재)를 뽑아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은 시리고 아픈 현실임을 화자는 지금 에둘러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시속의 화자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면서 시인 자신의 단계를 넘어선 그 어떤 공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양씨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 시에서의 어금니 같은 존재가 곧 이 시의 작자인 정양씨라는 사실이다. 정양씨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또한 처량하다. 그리고 엄숙하다.






[2006-11-22 22:33:31 에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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