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고개의 이웃들

가난한 정도를 나타내는 말 중에 '밑이 찢어지게 가나하다'는 표현이 있다. 매우 가난하다는 말인 줄은 대개 알지만 가난하면 왜 그 밑이 찢어지는지를 자세히 알고 있는 젊은이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밑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사람들이 요즘엔 옛날처럼 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밑'이라는 말은 더러 성기를 일컫기도 하지만 대개는 항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과 사오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해마다 그 밑이 찢어지는 보릿고개와 나락고개라는 게 있었다. 푸성귀들이나 이런저런 열매가 익어가는 나락고개는 고릿고개보다는 덜 어려웠다. 푸성귀도 열매도 없이 오로지 보리가 익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음력 이삼월 경의 그 보릿고개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굶주림과의 전쟁이었다. 풀떼죽이나 시래기죽을 먹는 사이 사이에 보릿고개의 남녀노소는 양지쪽에 간신히 돋아나는 풀들을 뜯어먹고 풀뿌리를 캐먹고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먹으며 늘 허기에 시달렸다. 그들은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어서 보리가 익기를 기다렸다.

보릿고개의 사람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그렇게 뜯어먹고 캐먹고 벗겨먹은 것들을 그들은 최후까지 뱃속에 담아두려고 안간힘을 썼다. '30년대에 쓰여진 소설 <적빈>(강경애작)에도 배변을 참기 위하여 깡총거리며 비틀거리며 걷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이거니와 그렇게 배변을 참는 것이 보릿고개의 상식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끝까지 버티다보면 막판에는 그 밑이란 것이 마침내 찢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밑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그들이 요즘은 또 살을 빼려고들 극성이다. 살을 빼려고 굶고 살 빼려고 약을 먹는다. 굶다가 생긴 변비에 밑이 찢어지고 약 먹다가 설사에 물려서 밑이 째진다고 한다. 나 사는 아파트 옆 공원에는 아침마다 그렇게 살을 빼려는 이들이 걷고 뛰고 달린다. 어떤 이들은 일삼아서 주먹으로 퍽퍽 배를 두드리기도 한다. 보릿고개를 넘던 백성들의 하루하루가 굶주림과의 전쟁이었다면 보릿고개를 잃어버린 요즘 사람들은 사시사철 살 빼는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살 빼려고 수술까지 한다는데 지구상에는 아직도 먹을 게 모자라서 밑이 찢어지는 이들이 득실거린다. 북한 동포들 생각이 나서 안타깝다. 먹어도 먹어도 허천나던 보릿고개의 백성들보다 살 빼려고 뻘뻘 비지땀을 흘리는, 굶어도 달려도 살이 찌는 이들이 더 불행해 보이기도 한다. 끝까지 배변을 참으며 밑이 찢어지던 그 보릿고개의 이웃들이 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