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와 삐비꽃

  산딸기는 말이 산딸기지 꼭 산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마을 근처의 밭가장자리나 후미진 길가에, 더러는 집근처에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시골아이들의 요긴한 군것질감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 있는 산딸기는 여간해서 아이들 차지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좀 후미진 곳이나 으슥한 곳, 어쩌면 뱀같은 것들이 득실득실거리다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옴직한 곳에 있는 산딸기라야 실컷 따먹고 나서 빈 도시락이나 주머니에 조심조심 채워올 수가 있었다.

  오디철이 지나가는 초여름, 모내기가 끝나고 어렵사리 심어놓은 모들이 한참 땅맛을 알아가는 무렵이면 마을아이들에게는 마을근처의 산딸기를 뒤지러 다니는 것이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었다.

  지난 일요일, 전라도 어느 시골길을 걷다가 나는 그 산딸기들을 봤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그런 산길도 아니고 밭둑길도 아닌 길, 빨갛게 익고 있는 길가의 산딸기들을 심심찮게 따먹으면서 나는 어느덧 삼십여 년 전의 소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산딸기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내는 데는 나는 지금도 자신이 있었지만, 그런 실력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길가에는 군데군데 무르익은 산딸기들이 모여 있곤 했다.

  이런 산딸기 무더기들을 만나면 우리는 그때 얼마나 신바람이 났었던가. 등에 식은땀까지 흘려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무지무지하게 재수좋아 했었던가. 무지무지하게 재수가 좋은 삼십여년 전의 신바람이 되살아나서 나는 가던 길도 가는 둥 마는 둥 한참 그 산딸기들을 따먹고 있었는데, 마침 시골 아이들 서넛이서 재잘거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그 아이들을 불러서 산딸기를 같이 따먹자고 권해보았다. 어른인 주제에 아이들의 군것질감이나 축내다가 들킨 꼴이 되어 좀 무안하기도 했고, 또 그 아이들과 산딸기를 나눠먹으며 이런저런 세상얘기도 좀 하고 싶었던 것인데 아이들이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넥타이를 매고 길가의 풀숲에 뛰어들어 산딸기를 뒤져내고 있는 어른을 잠깐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깔깔거리며 저희들끼리 저만큼 가버린다.

  아이들이 사라진 뒤, 나는 산딸기가 흔전만전 익고 있는 시골길에 무춤하니 혼자 남아서 신바람나던 산딸기 뒤져내는 일이 갑자기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결코 으슥하거나 후미진 곳이 아닌 이 시골길에 이처럼 산딸기들이 지천으로 남아있는 까닭에 대하여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느 늦은 가을날 , 나는 국민학교짜리 아들 딸들과 찝질한 산책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집 앞에서 아무 시내버스나 집어타고 종점근처의 시골길을 싸돌아다니다가 돌아오곤 하는 나의 산책길에 모처럼 아이들을 동참시켜 준 날이었다.

  산 아래 다닥다닥 내려붙은 논배미들을 지나가다가 거기 툭툭 튀어 다니는 메뚜기들을 잡아서 옛날 버릇대로 벼이삭을 뽑아 그 메뚜기들의 등을 꿰었다. 아이들이 등을 꿰인 메뚜기들처럼 진저리를 치면서 나를 원망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그 메뚜기꿰미를 흔들어보이곤 했다. 돌아오는 논두렁길에 아이들을 주저앉히고 나는 옛날 버릇대로 늦가을의 검부적들을 긁어모아 불을 지폈다. 아이들에게 그 메뚜기구이를 어떻게든 좀 먹이고 싶어서 꼬이고 달래고 으름짱도 놓고 해 보아도 영 통하질 않는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메뚜기구이를 혼자서 다 먹었다. 내가 잘 익은 메뚜기를 골라서 씹을 때마다 아이들은 무슨 야만인이라도 구경하듯이 진저리를 쳐가면서 애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메뚜기구이를 혼자 다 먹으면서 나는 메뚜기 맛을 잃어가고 있었다.

  메뚜기맛을 잃어가면서, 애비를 야만인 보듯 하는 아들 딸들이 내내 야속했고 슬픔도 그리움도 외로움도 아닌 찝질한 그늘들이 늦가을 저녁을 내내 적셔왔다.

  메뚜기나 산딸기, 보리민대(덜여문 보리를 삶아서 만드는 보리고개 식품)나 띠뿌리 칡뿌리나 오리쌀 단수수 등등의 우리 나이 또래 사람들의 향수식품들을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까닭이 없다. 요즘 아이들에게 그것들은 이미 군것질감이 아니리라. 미처 뽑아먹지 못한 삐비꽃들이 길가에 허옇게 패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은 이 땅에는 이미 없다. 먹고 돌아서면 금방 허기가 도는 한 그릇 풀떼죽을 먹고도 그 풀떼죽의 뱃심을 유지하기 위하여 걸음조차 가만가만 걸어야 했던, 대변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며칠이고 며칠이고 최후까지 참아야 했던 보리고개의 상식을 그들이 알 리가 없다. 쇠자래기(소주공장에서 내버리는 소주 찌꺼기)를 받아다가 죽을 쑤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온몸에 나른하게 퍼져오는 술기운으로 비틀거리며 학교에 가던 아이들,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논바닥에 깔린 독새풀씨를 훑어서 그것으로 먹으나마나한 죽을 쑤어먹고 배고픈 잠이 들던 그 보릿고개의 아이들은 이미 이 땅에는 없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깔깔거리며 사라져버린 시골길에는 삐비꽃들이 허옇게 물결치고 있었다. 그 시골길, 그 억울하게 피어있는 삐비꽃의 물결을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그것을 함께 억울하게 여겨줄 보리고개의 아이들이 나는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