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술은 약으로 쓰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몸에 해롭다. 술이 혹종의 질병에 대한 일시적인 처방으로 효험을 보는 것에 비하면 술로 인하여 결정적으로 몸을 망치는 예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의사는 특히 삼가야 할 음식으로 술을 첫손에 꼽는다. 감기와 배탈이 千病의 근원인 것처럼 술 또한 만병의 어머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술들이 더 그런 것 같다.

막걸리에 필수적으로 첨가되는 방부제는 극약이다. 소주도 그런 극약에 가까운 것이 섞여야 술이 되어 나온다. 사실인지 아닌지 잘은 몰라도 우리나라의 맥주는 농약이 범벅이 된 원맥으로 빚어진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술의 해로운 정도를 술값처럼 정확히 계산해 놓은 기준도 흔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싸고 비싼 정도는 틀림없이 그 해로운 정도와 반비례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의 대중주에 속하는 막걸리·소주·맥주들이 값이 비싸기도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몸에 해롭기도 또한 세계 수준이다. 그것들이 우리의 몸에 얼마나 해로운 것인가를 그것을 마셔 본 사람이면 너무나 잘 안다. 웬만큼 건강한 체질이 아니고서는 그것들을 좀 많이 마시고 나면 이튿날 어김없이 속이 쓰리고 골이 패고 기분 잡치는 설사를 해댄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 해로운 술을 마신다. 가장 값싼 勞賃이라도 축내어 가장 비싸고 해로운 술을 마신다. 그런 술을 마시는 곳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필요악이라는 것이 있다지만 그러나 이것을 생각할수록 끔찍한 자기학대인 것만 같다.

술꾼들 중 어떤 이들은 年中行事로 일 년에 몇 차례씩 禁酒를 결심한다. 아니, 한 달에 몇 차례씩 결심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결심을 자주하는 사람일수록 술로 인한 피해가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종교적 참회는 한 번만 유효하다지만 禁酒에 관한 결심은 회를 거듭할수록 그 필요성이 심각해진다. 그런데도 그 禁酒가 여간해서 실행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치고 맘씨 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술은 권하는 맛에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대개의 술자리에서는 서로 잔을 주고받는다. 아무리 권하는 맛에 마시는 것이 술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잔을 주고 받는 풍습은 금주나 절주를 결심한 사람에게는 거북하고 고약하고 진땀나는 敵이 아닐 수 없다. 술잔을 권하는 행위는 일단은 존경과 사랑과 이해의 뜻으로 미화되어 있다. 따라서 여럿이 어울린 술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려 하는 사람은 사람취급을 못 받는다. 조소나 미움의 표적이 되기는 쉽다. 마음 약한 친구들은 그러므로 더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더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마신 술은, 맨숭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존경이나 사랑이나 이해를 쉽게 자아내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경멸이나 증오나 터무니없는 오해까지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만든다. 그 술을 마시고 간이 커지고 그 술을 마시고 손쉽게 사랑하고 손쉽게 존경하고 손쉽게 친해지고 손쉽게 천해진다. 그리고 손쉽게 절망해 보는 쾌감을 누린다.

차 조심 불 조심 말 조심 사람 조심 등등...... 존경하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순종하고 원만하기 위하여 이 세상을 매사에 살얼음 밟듯이 조심조심 살아가야 하는 소심한 시민들에게는 그 절망적 쾌감이야말로 몸에 해로운 것쯤은 감당해내고도 오히려 계산이 남는 신천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피치못할 사연으로 마시고 싶은 술을 못 마시며 지내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술을 안 마시니까 세상이 온통 적막하게만 느껴진다고 한다. 생활에 리듬이 느껴지지 않고 온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이는 것 같다고도 한다.

그처럼 결정적으로 몸에 해로운 그 술보다도 리듬이나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 그 적막감은 우리 인생을 더욱더 해롭게 하는 것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 우리 몸을 결정적으로 해치려 드는 술집들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2년6월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