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어리석음

연암 박지원이 『虎叱』에서 호랑이의 입을 빌어 사대부들의 허위를 꾸짖고, 나아가 인간사회에 대하여 날카로운 문명비평을 가하는 것처럼, 『도척篇』에서 莊子는 九千의 악당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괴롭히는 도척의 입을 빌어 古今의 聖賢들을 모욕하고 나무란다. 小人이 재물을 탐함이나 군자가 명예를 탐함이 모두 마찬가지로 하늘의 이치에 어긋남을 역설하며 인간의 허위와 毁節을 통쾌하게 譏弄한다. 부귀공명등을 위하여 서두르다가 마침내 인간의 본성을 잃게 되는 비극을 경고해 두고자 하는 것이 장자의 의도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이야기다. 도척이 사람의 간을 꺼내어 회를 쳐서 먹고 있는 중에 孔子가 그를 찾아간다. 간신히 도척에게 접근하여 별렀던 설득을 시작하지만, 오히려 성인군자들의 비인간적 행위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나무라는 도척의 정연한 논리에 몰리어 孔子는 하릴없이 쫓겨 나온다. 빨리 달아나지 않으면 네 肝을 꺼내어 점심반찬에 보태겠다는 도척의 일갈에 천하의 공자도 그만 혼비백산 사색이 되어 달아난다는 이야기다. 그 도척이 의기양양하게 나무라는 여러 人物들 중에 介子推가 나온다. 피난길에 오른 왕이 몹시 굶주렸을 때 子推는 제 허벅다리 살을 베어 왕에게 먹였다. 난리가 지난 뒤에 왕은 그때 따르던 사람들에게 땅을 封할 때, 깜박 子推를 잊어버렸다. 왕은 나중에야 크게 뉘우치고 子推를 찾아 介山으로 갔으나 子推는 그 산 속에서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子推를 나오도록 하기 위하여 왕은 介山에 불을 질렀으나 子推는 나오지 않기 위하여 나무를 꼭 붙들어 안고 타죽고 말았다. 도척의 말대로 과연 요령없는 어리석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도척은 그 유명한 백이·숙제도 그런 식으로 꾸짖고 尾生도 꾸짖는다. 尾生은 다리 밑에서 어떤 여자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 자리에 나갔다. 그 여자는 아직 안 나왔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홍수가 졌다.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尾生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기둥을 안고 죽었다. 무릇 인간의 목숨이란 하늘의 뜻인 바 인간이 만든 체면이나 의리나 명예를 따르고 지키기 위하여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개 돼지만도 못하다고 도척은 역설한다. 하긴 일리가 없는 바도 아니다. 도척의 입을 빌어 장자는 짐짓 하잘 것 없는 것들에 매달리어 살아가는 인간의 맹점을 譏弄하는 듯 싶지만 실상은 전국시대의 위대한 양심이던 공자의 超時代的 외로움을 강조해 두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수모를 감내하면서 갖은 정성으로 그 시대를 사랑했던 공자로서도 희대의 무뢰한인 도척, 정연한 논리를 내세워 호령호령하는 그 도척의 억지 앞에서 하릴없이 쫓겨나야 했던 이 넌센스를 통하여 장자는, 모든 역사적 폭력과 비리의 형태를 미리미리 풍자해 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척이 논리정연하게 나무라던 인물들의 어리석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하찮은 의리를 섬기고 터럭 같은 명예를 지키는 어리석음이야말로 모든 역사적 비리에 도전하는 질긴 끈임을, 가장 위대한 어리석음을 장자는 아프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나 아닐까. 학문에 뜻을 두고 사는 우리 大學人들의 입장에서도 우리의 학문과 그것을 통한 떳떳한 자기 실현을 위하여, 요령이나 피우며 정연하게 말만 앞세우고 자기를 합리화시키려고만 할게 아니라 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어야할 것만 같다. 우리의 위대한 어리석음, 우리 학문의 순수성을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줄 알아야겠다. (1983년 3월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