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정답

우리가 어렸을 때 즐기던 수수께끼 놀이 중에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이 있었다. 천재지변도, 질병도, 호랑이도, 귀신도 아닌 그 正答,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라는 그 正答은 우리들 어린 가슴 속에 써늘하고 불안한 그늘들을 남기곤 했었다. 우리들 어린 가슴 속에는 아직 실감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그 서러운 배반감들이 그러나 필수교양처럼 자리잡게끔 되어 있었다. 아직은 실감나지 않으면서도 그런대로 막연하게 자리잡은 그 교양은 아닌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 가면서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교양이었음을 우리로 하여금 無時로 확인하게 해왔다. 作家 채만식은 일찍이 미친개와 무식한 사람이 제일로 무섭다고 했다지만 어찌 미친개나 무식한 사람뿐이랴, 우리 모두는 이미 잔인하고 간교하고 악착스러운, 정말로 무서운 그 무엇들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잔인하고 비열하고 치사하고 간교하고 악착스러운 악덕들을 적당히 합리화시키고 미화시키면서까지 우리는 모두 무서운 사람들 속에서 점점 더 무서운 사람들이 되어간다.

그러나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무서운 가슴들 속에서는 끝끝내 외로움이 남으리라. 착하고 외롭고 아름답고 깨끗해지고 싶은 외로움, 아무리 무섭고 더럽고 치사할지라도 그 가슴 밑바닥에 끝끝내 남게 될 외로움들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속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더라도,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무서운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그 고통, 그 기쁨은 정말로 영원한 것인가. 朝聞道면 夕死加矣라 했다거니와 사람이 제일로 무서운 것이라는 그 슬픈 正答, 그 서러운 교양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제는 죽어도 좋을, 무섭지 않은 단 하나의 가슴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한평생 끄덕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3년 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