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감격과 역사적 절망

이산가족이 너무 많았다. 애초에 큰맘 먹고 두 시간으로 계획되었다는 KBS의 이산가족 찾는 프로그램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이나 계속되더니 당분간 그것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짜여 진행되리라고 한다. 그동안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가족들이 수십년 묵은 한을 풀었다. 수십년 만에 만나서 울부짖고 기절하고 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은 그들과 함께 우리 모두의 비극을 곱씹어 보곤 했다. 부등켜 안고 울부짖는 사람, 목이 메어 이름조차도 다 못 부르는 사람, 울부짖으며 만세를 불러대는 사람, 그리운 이름들을 부르다가 벌벌 떨다가 마침내는 기절해버리는 사람, 그런 극적인 장면들은 시간이 생길 때마다 몇 차례고 방송되곤 했었다. 전쟁과 가난과 세월에 찌들어 기쁨도 슬픔도 잊어버린 듯한 그런 얼굴들만은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인지 신비하기조차 했었다.

그런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을 부둥켜 안고 울부짖고 싶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그리운 이름들을 부르며 벌벌 떨며 목이 메이고 싶었을 것인가. 헤어져서는 안 되는, 그러나 서로 헤어져 살아야만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감격적인 장면들은 또 얼마나 감당못할 절망이었을 것인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이고 방송국 주변을 헤집고 다니기만 한 사람들, 가족을 못 찾고 허탈하게 돌아섰을 수 많은 뒷모습들이 그 절망, 한맺힌 번호판을 가슴에 걸고 며칠이고 카메라를 기다리던 그 초조, 다른 사람들의 꿈 같은 만남을 구경이나 하면서 견뎌야 하는 그 초조한 절망들은 만남의 감격보다도 더 우리 시대를 아프게 한다. 그 자극을 감당 못하고 자살해버린 사람도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싶어하는 것이 이처럼 지독한 형벌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그 아픔들과 함께 새삼 확인하곤 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그 감격의 뒤안에 모래알처럼 깔리어 무심히 짓밟히는 그 절망들을 우리 시대는 과연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산가족 찾는 일이 진행되는 동안 그 감격은 점점 줄어들고 우리 시대의 절망이 점점 더 짙어지는 것이나 아닌가 싶어 방정맞은 걱정이 앞선다.

<1983년 7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