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문명

아무리 아프리카 같은 곳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그곳의 야만인들도 점점 문명인들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일지 궂은 일일지 잘은 몰라도 하여튼 지구상의 야만인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한 문명인들은 그들보다도 더욱 더 야만스러운 방법으로 그들을 학대 착취하고 또 학살조차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 야만인들에게 문명인들의 턱없는 우월감은 자기들의 만행을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게 했었다.

그 턱없는 우월감들이 이제는 씻을 수 없는 죄악감이 되고 인간에 대한 짙은 향수가 되어 문명인들의 가슴을 그늘지게 하는 중이다. 문명인들의 가슴을 그늘지게 하는 인간성에 대한 그 짙은 갈증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마침내 야만인 보호구역을 만들게 할지도 모른다. 보호구역을 만들어야 할 만큼 그들의 숫자는 점점 줄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구촌에는 오히려 야만적 행동들이 늘고 있다. 문명인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그들의 삶의 방식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소박한 것이었던가를 실감나게 하는 현상일 것이다. 야만인들이 줄어들수록 인간성를 상실해버린 신종 야만인들이 자꾸만 더 늘어나게 마련인가 보다.

어떤 미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집단 학살이 우리 지구촌에는 너무나 빈번히 자행된다. 유태인 학살, 원폭투하를 비롯하여 캄보디아, 아프카니스탄, 팔레스타인 등지의 집단학살, 그리고 최근의 KAL기 격추사건과 같은 만행들은 지구촌의 모든 가족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더더구나 충격적인 것은 그 모든 집단 학살이 우발적인 것들이 결코 아니고 치밀하게 계획된 만행이라는 점이다. KAL기 격추사건도 그것이 이미 결과까지 면밀히 검토된 만행임이 점점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음흉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규탄의 목소리들이 높아갈수록 불안감 또한 깊어만 간다.

인간성에 대한 갈증 때문에 헉슬리의 소설처럼 언젠가는 야만인 보호구역도 필요하게 되겠지만 그보다 먼저 경악과 불안으로부터 지구촌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종 야만인들의 보호구역 같은 것이 어떻게든 만들어져야 할 것만 같다.

<1983년 9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