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와 씻나락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해마다 고달프게 넘겨야 하는 그 보릿고개에 凶年이 겹칠 때의 참상이란 이루 다 형언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보릿고개를 넘겨야하는 대부분의 한국의 농민들은 먹고 돌아서면 금방 배가 고파오는 한 그릇 풀떼죽을 먹고도 그 풀떼죽의 뱃심을 오래 유지하기 위하여 걸음조차 가만가만 걸어야 했었다. 대변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며칠이고 며칠이고 최후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 보릿고개의 상식이었다. 밑이 째지는 가난이라는 말은 아마 그런 데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허기에 지친 남녀노소는 먹이를 찾아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소나무 속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고 칡 뿌리나 띠 뿌리를 캐어 한나절 내내 이가 시리도록 씹어 뱉기도 했고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논바닥에 갈린 독새풀 씨를 훑어서 그것으로 먹으나마나한 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새삼스럽게 가난을 핑계 삼아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처럼 어렵게 어렵게 보릿고개를 넘기는 농민들은 때로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죽어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씻나락만은 결코 손을 안 댄다. 죽어도 베고 죽는다는 그 씻나락, 보릿고개를 넘기는 농민들의 이를 악물고 한사코 지켜 온 그 눈물겨운 희망을 새삼 음미하고 싶은 것이다.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그 유명한 철학보다 이를 악물고 씻나락을 지키던 그 간절한 힘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구체적으로 인생과 세계의 의미를 확인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선거니 뭐니 해서 대학촌의 현실은 아무리 속되고 잡스러워진다 할지라도, 세상살이가 아무리 고달프고 험난하다 할지라도, 위기의식이 도처에 득실거리고 그 어느 절망적인 힘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을지라도 젊은 대학인들은 이를 악물고 내일을 위해서 뿌려질 그 순수의 씻나락을 최후까지 지켜야 한다. 학문적·인간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간절한 힘, 그 순수한 열정들이 대학인들의 가슴마다 눈물겹게 살아 있을 때, 대학과 사회와 민족과 역사의 맥박들이 비로소 대견스럽게 가다듬어질 수 있을 것이다.      <1983년 1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