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와 배반감

완판본 열녀 춘향 수절가는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사건전개상의 비합리성 때문에 숱하게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신재효본 춘향가에 이르러서는 그 비합리성들이 많이 때워지고 어느 정도 조리에 맞는 이야기로 정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오늘날 불리우고 있는 대부분의 춘향가들은 그 앞뒤가 잘 들어맞는 신재효본보다도, 통일성이 결여되어 논란이 많은 완판본에 훨씬 더 가깝다.

주지하다시피 신재효는 당시에 있어서 어떠한 창악가라 할지라도 그의 지침과 척도를 거치지 않고는 도저히 명창의 반열에 끼이지 못하였다고 하거니와 그러한 영향력을 가진 신재효의 탁월한 작가의식이 반영되어 정리한 춘향가는 어찌하여 오늘날의 춘향가의 창자들에게서 외면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통일성이 결여된 마구잽이로 만들어진 완판본이 대표적인 춘향가로 널리 불리우고 있는지 잠깐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완판본에 의하면 우리의 춘향은 그 신분이나 성격이나 행동에 있어서 확실히 통일성을 잃고 있다. 양갓집 규수였다가 바람끼 많은 소녀였다가 천하의 음녀처럼 정사를 즐기는 名妓의 후예였다가 이별을 당해서는 체면이고 예의고 다 집어때리고 마구 포악을 해대는 악녀가 되기도 한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런 등등의 모든 불합리성들이 신재효본에서는 대체로 정리되어 구성의 합리성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소설적 합리성을 위하여 민중들의 소박한 감정은 배반을 당한다. 진실을 위하여 사실을 뛰어넘는 소박성과 대담성이 없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사실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는 생명력과 적극성은 오히려 완판본이 만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아직도 대표적 춘향가로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합리주의는 꽤 오랫동안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착실히 교통순경의 구실을 수행해 왔고 또 앞으로도 믿음직한 교통정리를 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그 합리적 사고방식이 근원적 진실이나 생명감 넘치는 소박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표면적 사실만을 내세우는 지저분한 무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합리성을 갖추면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 소극적 합리성을 무시할 수 있는 소박함과 적극성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까운 경우를 우리는 우리 人生의 주변에서 늘 실감하고 있는 바이다.          <1984년 1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