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과 야만적 편견

東京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그네들의 생활풍습 중에서 西洋人들에게 혐오감을 줄만한 것들이 일대변혁을 가져 왔었다고 한다. 당시의 日本人들은 그러한 변혁을 거의 당연시했다고 들린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그 당연하던 변혁들에 대하여 그들은 심심찮은 회의를 겪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이 겪는 그 회의야말로 물불을 안 가리는 西洋化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당시의 풍조보다도 어쩌면 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그것이 전혀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다. 어떤 이들은 88년을 계기로 우리의 西歐化는 적어도 20년쯤 당겨질 것이라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예견들을 하기도 한다.

그 전초전으로 수난을 겪는 데가 바로 작금의 보신탕집들이다. 살판난 것은 이 땅의 개새끼들이요, 심장 강한 보신탕 애호가들이다. 턱없이 비싸던 개값이 요즈음엔 옛말대로 『개값』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개라는 짐승은 사실상 별로 쓸모가 없다. 잡아먹지도 못하는 짐승이라면 괜히 먹이나 축내고 여기 저기 오물이나 남기고 느닷없는 곳에서 괜한 사람을 짖어대며 겁을 주다가도 막상 도둑이 드는 날에는 짖지도 않는 일이 허다한, 그야말로 갈 데 없는 지천꾸러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개들은 분에 넘치는 호강을 누린다. 물불을 못 가리는 그 충성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른 어느 가축들보다도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한다. 개 같은 놈, 개새끼, 개잡놈, 개지랄 등등 온갖 혐오감을 일단 개에게 들씌워 놓고 그 물불 못 가리는 속성을 미워하고 비웃고 하는 것이다. 그 개를 소나 돼지처럼 잡아먹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개고기를 즐기는 몇몇 나라의 풍습이 白人들에게 야만시되는 것은 반드시 당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有色人들에 대한 白人들의 전통적 편견이 얼마나 야만스러운 것인가를 먼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감추어버려야 할 한국적인 것들은 실상 보신탕 같은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개고기가 몸에 해롭다는 실감 안 나는 뉴스 한 마디에 이 땅의 보신탕 애호가들이 하루 아침에 맥을 못추는 소심성, 白人들의 편견을 맞춰 가려는 낯 간지러운 열등감, 오랜 풍습을 당장에 뿌리 뽑으려 드는 획일화되고 경직된 사고방식들이 아닐까 싶다. 여간해서 舊正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신탕 또한 유감스럽게도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84년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