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먹고싶지 않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되는 일이 가끔 있다. 사고 싶지 않은 물건을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고 싶지 않은 여행길에 올라 인생이 바람든 무속처럼 팍팍하게만 느껴질 때, 어쩌다 만나는 것조차 싫어 죽겠는 사람을 노상 만나야 될 때, 말을 꺼내기 전부터 하기 싫어진 말을 끝까지 해야 하고 그리하여 밑도 끝도 없는 혐오감들이 깊은 밤 머리맡에까지 따라와 출렁거릴 때, 하기 싫은 짓만 골라가면서 해야 되는 것이 숙명처럼 캄캄하게 앞을 가로막는 그런 순간들이 가끔씩 있다.

죽기 싫어 죽겠을 때에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기에, 그 연습삼아서 하기 싫어 죽겠는 일만 골라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우리에게는 그처럼 많다. 먹고 싶은 것 다 먹을 수도 없고, 사고 싶은 것 다 가질 수도 없고, 가고 싶은 곳에 다녀볼 수는 더구나 없게 마련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욕심껏 만나면서 살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말만 골라하면서 살 수도 또한 없다. 듣고 보고 읽고 느끼고 하는 것들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야말로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어리석을지라도 사람이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하고 또 있게 마련이다. 하기 싫은 일들이 겹칠 때마다 그것은 더욱 더 절실한 것이 되어 우리의 시대와 人生을 초조하게 만든다. 평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천 수만 가지의 하기 싫은 일들을 기꺼이 겪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을 때 기꺼이 죽는 것이 죽음에 임하는 종교적 이상이기에 살아서 모든 고난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인생의 한 슬기이리라. 사람에게는 목숨을 걸고라도 해내지 않아서는 안 되는, 하고 싶은 어떤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어리석고 우직하고 단순한 인생태도일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우리가 참고 견디면서 겪어야 하는 인생의 모든 시련들이 얼마나 신경질 나고 혐오스럽기만 할 것인가. 우리의 집념들이, 보다 단순하고 소박해질 때까지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시대는 결코 초조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1984년 3월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