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 소설의 신탁통치 수용 양상*
                                                                                                                        鄭   洋

 

1. 삼팔선과 신탁통치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 “신탁통치 결사 반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등등의 구호를 어깨에 두른 국민학교 학생들이 시가행진하는 진풍경을 미군정기의 서울 시민들은 가끔 볼 수 있었다. ‘똘똘 뭉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여 삼팔선을 깨뜨리자’ 쯤으로 이해됨직한 구호들이었다. 그것들은 그러나 삼팔선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탁통치를 반대하기 위하여 동원된 관제데모의 구호였다.

삼팔선을 그어 한반도 분단의 단초를 마련한 것도, 한반도의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이를 모스크바 삼상회담에서 관철시킨 것도 미국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그 삼팔선을 깨뜨리자는, 혹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당시의 대표적인 구호들이 사실은 적극적 반미구호였다는 사실을 구호를 사용하는 쪽이나 그걸 듣는 쪽 모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군정청의 묵인과 방조 하에 진행되는 그 관제데모의 구호들에 대해서 당시 속내를 모르는 한국사람들은 그것들을 당연히 반소, 반공구호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국민학교 학생들까지 동원된 그 관제데모는 삼팔선도 신탁통치도 모두 소련이나 공산당 탓으로 여기게 하는 효과를 효과적으로 확산시켰던 셈이다.
주지되어 있는 바처럼, 1945년 8월 6일, 사상 최초로 가공할 핵폭탄을 일본에 투하하고 일본의 항복을 기다리던 미국은 나흘 후인 8월 10일, 임의로 삼팔선을 그어 한반도의 분할점령을 소련에 제안했고 소련은 이를 수락한다.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삼팔선은 당시 한국인들이 치열하게 기대했던 임시적 유동적 분할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중인 소련군의 남진을 일단 막아둠으로써 2차세계대전 이후의 냉전구도에 대비하기 위한 미국의 면밀한 계획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만주를 거쳐 한반도 북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소련군이 미국의 38선 분할점령 제안을 거부하고 계속 남하할 것에 대비해서 미국은 서둘러 부산에 미군을 진주시킬 계획까지 세워두었다고 한다.

한국은 전범국도 아니면서 그렇게 분할 점령 지역으로 결정된 뒤에 해방을 맞는다. 해방의 감격을 소재삼아 씌어진 문학작품들만도 부지기수이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8.15는 그렇게 감격할 만한 해방이 아니었다. 1945년 12월 16일에서 12월 27일까지 2주 동안 열렸던 모스크바 삼상회담은 회담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동아일보』에 의해서 왜곡 선동되기 시작한다.
워싱톤 25일발 합동 지급보(至急報)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외상회담을 계기로 조선 독립 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 측이 농후해 가고 있다. 즉 번즈 미국무장관은 출발 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 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 간에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 선언에 의하여 조선은 국민투표로써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 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관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38선 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통신사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막연히 ‘워싱톤 25일발 합동’으로만 표기되어 반탁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동아일보』의 이 머리기사는 그 표제나 내용 모두 전형적으로 왜곡되어 있었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도, 미국이 즉시 독립을 주장한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면 그 기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었다. 미국이 10년 간의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그 기간을 5년으로 하자는 소련안이 채택되었던 사실이 이처럼 왜곡된 표제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이어지는 기사 내용에서도 그 친미적, 반소적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친미, 반소적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번즈 미국무장관은 출발 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와 같은 날조를 보태기까지 한다.
삼상회담의 중요 결정 사항이 ‘조선 임시정부의 수립’이었고 ‘신탁통치 실시’는 그 부수적 조건으로 제시된 것이었는데, 이 기사는 ‘신탁통치 실시’라는 회담의 부수적 조건을 주 안건으로, 그리고 그것이 소련의 의지인 것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을 40년 간 신탁통치하고자 했던 루즈벨트의 카이로 선언도 조선 독립을 위하여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쯤으로 왜곡되어 함께 엮여 있다.
이 기사는 또 38선의 분할점령이 미국의 제안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소련의 의지에 의해서 관철된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리하여 신탁통치는 독립과 대치되는, 한반도에 다시 식민지의 굴레를 씌우는 개념으로, 나아가서 신탁통치 찬성은 매국적 태도고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애국적 입장이라는 것을 이 기사는 강변하고 싶어한다.

이렇듯 미국의 눈높이에 맞추어 왜곡된『동아일보』의 기사는 그 이후 회담의 전 과정과 그 결과가 정확히 밝혀진 1946년 1월 이후에도 막무가내로 연일 왜곡을 유지하면서 선동적인 기사로 변했고 “전 민족이 투쟁하자”(김구), “조선 적화의 기도”(안재홍), “전국이 결의 표명”(이승만), “최후까지 투쟁하자”(송진우) 등 각계의 격정적인 성명서, “탁치반대”, “독립쟁취”, “임정 지휘로 국민 총동원위원회 설치”, “최후의 일인까지 혈투하자”, “3천만아 살았느냐? 독립전선에 생혈(生血)을 뿌리자” 같은 선동적인 구호들이 게재되었다.
??동아일보??에 의해서 왜곡된 삼상회담 결과는 해방정국의 뜨거운 쟁점이 되어 이후 1947년 9월, 한반도 문제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유엔에 이관되기까지 한반도를 들끓게 한다. 8.15 해방이 결코 감격할 만한 일이 아니었듯이 모스크바 삼상회담 결과 역시 돌이켜보면 그렇게 들끓을 일이 아니었다.
삼팔선을 없애고 점령군들을 철수시키고 통일된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5년간의 신탁통치를 받아들이자는 세력, 치욕적인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곧바로 통일된 독립국가를 만들자는 세력, 그리고 치욕적 신탁통치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삼팔선 이남만으로라도 단독정부를 만들자는 세력들이 해방정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박현채는 그의 한반도 분단 5단계설에서 신탁통치에 관한 논란을 이념분단의 단계로 파악하고 있거니와 그 무렵의 격렬했던 논란들은 결과적으로 모스크바 삼상회담의 왜곡을 근거로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들러리의 구실을 비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때 모스크바 삼상회담 결과에 반대하지 않고 거국적으로 받아들였더라면 최소한 한반도가 분단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신탁통치를 반대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에 삼팔선 이남만이라도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5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런 견해들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가정이 반드시 허망한 것만은 아니지만,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이고 더 이상적이었는지 어느 쪽이 더 객관적이었는지를 따지는 일은 오늘날 별로 중요한 일인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 무렵의 뜨겁던 논란이 한국언론의 의도적 왜곡과 미소 점령군들의 집요한 탐욕(한반도에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려는)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극적 사실에 대한 역사인식일 것이다.
삼팔선으로 분할점령을 하기 전에 삼상회담 결과가 먼저 공표 되었더라면 거기에 대한 찬성 반대의 양상도 사뭇 달라졌을 것이고 한반도 역사 또한 또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도 되기 전에 서둘러 분할점령부터 해놓고 한반도에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미국의 속내가 다 드러난 뒤에 공표된 삼상회담 결과는 그 추이에 따라 분할점령의 명분을 확보해두고자 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삼상회담 결과를 받아들이자는 쪽은 그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반대하는 쪽은 김구 쪽처럼 반외세적 입장이었든 이승만 쪽처럼 친미적 입장이었든 미국에게 그 구실을 주게 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삼상회담 결과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확고했더라면 미국은 삼팔선을 결정할 때처럼 은밀하고 신속하게 결정하여 그것을 추진했을 것이다. 그것을 결정하기 위하여 여러 날에 걸쳐 회담을 하고 세상에 알리고 하는 동안에 한국의 언론(??동아일보??)은 앞서 밝힌 바처럼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신탁통치 반대 여론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신탁통치 반대 여론, 그것은 38선 분할점령의 명분을 확보해주는 필수적 조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설혹 반대여론이 없었더라도 미국은 한반도 분할점령의 의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결과적으로 들러리의 역할일 수밖에 없었다.
해방기의 한국 소설들 속에는 신탁통치를 소재삼아  씌어진 작품이 더러 있다. 신탁통치에 관한 논란이 뜨거웠던 점에 비하면 해당 작품의 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신탁통치에 관한 논란의 기간이 2년도 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방정국의 혼란으로 인한 문화적 안정감의 결핍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당시 신탁통치에 관하여 관심을 보였던 김송의 『武器 없는 民族』, 이태준의 ?解放前後?, 안회남의 ?농민의 비애?, 김동리의 ?혈거부족? 그리고 김영수의 희곡 ?혈맥?들 중 비교적 신탁통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신탁통치에 관하여 서로 상대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武器 없는 民族』과 ?解放前後? 두 편을 중심으로 신탁통치의 수용태도를 점검하여 신탁통치에 관한 해방기 한국소설의 현실인식을 살피고자 한다.

 

2. 해방기 소설의 신탁통치 수용양상

2-1. 노동자의 반탁과 『武器 없는 民族』
“신행이가 근무하는 협동인쇄소 내에도 두 파가 생겼다. 하나는 임정(臨政)파요 하나는 인 공(人共)파다. 인공파의 주장은 인민공화국은 인민을 대표한 정부이니 그를 지지한다는 것이 고 임정파는 인민공화국은 해방 이후에 새로이 생겼으니 아모 업적도 없고 임시정부는 조선 민족의 오천년 역사와 문화를 고수하기 위해 二十七년간이나 해외에서 싸웠으니 우리 정부로 모셔도 좋다는 것이였다. 이 두 개의 당파는 공장 내에서 만나기만 하면 다툼질이다.
“이눔아 넌 무산자가 아니냐, 무산계급을 대표한 공산당이 지지하는 인공을 왜 싫다는 거냐?” 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한생원 아들 필복이의 윽박질이다. 그러면 임시정부 지지파에 속한 선행이는 “조선사람은 오천년 문화를 갖인 민족이야. 그렇게 역사는 깊은 민족이 왜 공산주의 같 은 외국사상을 생채로 삼킨단 말이냐? 초목(草木)은 흙에서 나고 고기는 물 속에서만 사는 것처럼 우리 민족은 조선의 고유한 문화를 버리고는 살 수 없어!”
하고 반박했다.
“이자식 노동자에게 무슨 민족이야! 민족주이란 무엇이냐, 그런 달콤한 미명하에 세계 각 국 노동자는 착취를 당해왔다. 아모리 같은 민족일지라도 착취당하면 서로 원수가 되는 거 야!” “넌 아직 철부지다. 임시정부의 정강을 못 봤니? 공장은 국영, 농토는 농민에게---경제적 으로 전민족의 복리를 위한다는 임정의 시정포부가 뭐에 공산당의 정강과 달으냐!”

임정과 인공을 따로따로 지지하는 이 소설의 작중인물들이 자기 주장을 펴며 다투고 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을 통해서 먼저 파악되는 것은 이들이 둘 다 노동자이고 그 중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신행이 임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이 대목은 모스크바 삼상회담의 결정이 발표되기 직전의 상황인 바, 주인공 신행의 어투로 보아 국론이 찬탁 반탁으로 나뉘는 시점이 되면 신행은 반탁의 대열에 서게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 대목에 곧바로 이어지는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 신행은 반탁운동의 선봉에 서서 쇠울타리를 뜯고 종각 안으로 뛰어들어가 쇠북을 울리며 ‘신탁통치 반대’를 울부짖는다. 소설적 반전의 효과가 없는, 지나치게 정직한 결말이긴 하지만 작가는 그런 소설적 미학보다는 ‘노동자의 반탁’을 강조하여 반탁운동의 계급적 확산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주인공 신행이 상식적으로는 공산당을 지지해야 할 무산계급에 속하는 노동자이면서도 인공의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임정의 편에 서서 반탁운동 대열에 앞장서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이 소설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반탁운동, 그것은 당시 현실에서 소설적 감동을 자아내지는 못할지라도 반탁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킬 수는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단단히 기대했던 것 같다.
『武器 없는 民族』은 1부 ?만세?, 2부 ?武器 없는 民族?, 3부 ?인경아 울어라?로 발표되었던 연작소설이다. ?萬歲?는 식민지 시대의 삶의 참상과 해방의 감격을, ?武器 없는 民族?은 해방 이후 미군이 조선에 진주하기 전, 하루라도 빨리 미군이 진주하기만을 기다리면서, 해방이 된 뒤에도 일본 군인들에게 핍박당하는 민족적 울분을, ?인경아 울어라?는 신탁통치로 야기되는 해방정국의 이념대립의 양상을 각각 다루고 있다. 각각 다른 소재들을 다루고는 있지만 1?2?3부에 공통적으로 지속되는 상황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이렇다 할 재주도 없는 주인공 강주사 부자의 참담한 생활상이다. 해방 전의 삶의 참상은 물론이거니와 해방 이후에도 강주사의 형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일본인들의 물건이나 재산을 헐값에 사들여 더러 떼돈을 버는 이들이 생기고, 복덕방을 경영하는 강주사에게도 그 떼돈 벌 일이 전혀 없었던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강주사는, 버리고 가야 마땅할 일본인들의 재산을 돈 주고 사들이는 것은 일본인을 돕는 것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해치는 일쯤으로 여긴다. 해방이 된 뒤에도 강주사는 여전히 일감이 거의 없는 가난한 복덕방 영감으로 남아 있다.
남편과 함께 평생을 가난에 찌든 아내, 남의집살이를 하다 시집온 며느리, 배운 것도 특별한 재주도 없이 징병에 끌려가 일본군의 모진 매질을 견디다 다행히 죽지 않고 귀환하여 인쇄소 직공이 된 아들…, 이 소설에 지속되는 강주사 가족들의 그 가난은 ‘노동자의 반탁운동’이라는 이 소설의 의욕적 결말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설정된 상황일 터이다. 결말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고 있는 그 가난은 그러나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몇 가지 소설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리얼리티를 가까스로 유지하게 한다.
김송이 주관하던 ??백민??이 당시 해방정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발행되던 우익 잡지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은 몇 가지 소설 외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단락에 마치 신문 호외인 것처럼 인용된 부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12월 28일 거리거리에는 <신탁관리 절대 반대>라는 놀라운 삐라가 붙었다. 신문사에서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조선신탁관리의 내용을 호외로 벽신문으로 돌리었다.
「朝鮮은 信託管理―
最高 五年間?
美蘇英三國外相은 朝鮮에 臨時政府를 세우고 五年間 信託管理를 하기로 決定,
但 38度線은 二週日以內에 米蘇兩軍이 會議하야 撤廢함」
이런 보도를 접한 민중은 청천벽력을 맞은 듯이 놀랐다. 신행이도 군중들 사이에서 호 외를 보고 전기에 부디친 듯이 아찔하였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서리를 쳤다.
카이로 선언에 조선은 자유독립을 시킴이라는 언질(言質)이 있었는 데도 불고하고 그것 을 무시하고 신탁통치란 말이 왠 말이냐? 이제까지 일본 식민지 정책에 전민족은 신물이 나도록 착취 박해를 받었는데 이번엔 연합국의 신탁통치란 무슨 수작이란 말이냐?
군중은 이렇게 외쳤다. 모다 살기등등하게 엄숙한 표정으로 신탁통치를 비난하였다.
(142-143면)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위 인용글에 있는 정보를 물론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특히 ‘但 38度線은 二週日以內에 米蘇兩軍이 會議하야 撤廢함’이라는 내용은 그 호외가 정말 사실이었을까를 의심하게 한다. 그것이 당시 어느 신문사의 왜곡된 기사에 곁들인 단순 오보였는지, 어느 신문사가 왜곡된 기사에 다시 왜곡을 덧칠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것은 단순 오보는 아닐 것이다. 그것이 단순 오보였다면 작가 김송이 그 내용을 그대로 소설에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 오보가 아니고 신문사의 의도된 오보라면 그것은 이미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38선의 철폐라는 민족적 희소식 앞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과 민중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서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김송 또한 이 소설의 서술 태도로 보아 그 덧칠된 것으로 여겨지는 오보 앞에서 소설 속의 민중이나 주인공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38선 철폐’ 소식은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나 민중에게나 작가 김송에게나 결코 희소식이 아니고 ‘청천벽력을 맞은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서리를 치’게 하는 것일 따름이었다. 호외 기사 중 카이로 선언에 관한 부분도 ‘적당한 시기(40년쯤 신탁통치를 거친 후)에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카이로선언의 전제조건이 생략된 채 마치 곧바로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듯이 서술되어 있다.
이 글 첫머리에 밝힌 것처럼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이 당시 데모 군중의 단골 구호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38선 철폐 소식과 그에 대한 소설 속의 반응은 실로 음흉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위 인용글의 분위기대로라면 ‘38선 철폐’ 는 곧 소련군의 남진을 예고하는 위협적 내용이 되어 있다. 다시말해서, 신탁관리가 실시되고 38선이 철폐되는 것은 조선이 소련군에 의해서 공산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탁통치를 반대하여 38선을 기필코 유지하자’는 그 무렵의 반소- 반공 논리가 신문기사로 왜곡된 것이다. 그리고 그 왜곡된 반소?반공 논리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이 작가 김송의 현실인식인 것이다.

일본군의 최후의 발악은 날로 심해갔다. 헌병들은 조선인 상점에 침입하야 물품을 약탈 하고 사람 죽이기를 파리 잡듯 한다는 풍설이 떠돌자 시민들은 공황증에 걸리었다. “소련군은 벌서 북조선에 진주하야 일본군대를 모조리 무장해제를 끝내주고 일인과 함께 친일파의 재산도 몰수했다는데, 미국군은 언제나 서울에 진주하나? ” 하고 시민은 하로가 멀다고 고대했다. 그리고 저 포악무도한 놈들이 이 서울 거리에서 내쫒기는 통쾌한 광경을 보궆어 했다.“(128면)

이 부분은 주인공 강주사의 시점이 아니고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 글이다. 이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정작 삼팔선 분할점령 사실에 대해서 김송은 이상하리만큼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서 일부러 외면하는 듯한 혐의 또한 떨칠 수가 없다. 마땅히 관심을 보여야 할 상황임에도 김송은 오히려 38선 분할점령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38선 분할점령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소련군은 벌서 북조선에 진주하야 일본군대를 모조리 무장해제를 끝내주고 일인과 함께 친일파의 재산도 몰수했다는데, 미국군은 언제나 서울에 진주하나? 하고 하로가 멀다고’ 미군진주를 고대하고 있다.
작가가 이 글에서 ‘미군진주를 하루가 멀다고 고대하는’ 이유는 해방이 된 이 나라에서 마땅히 물러나야 할 일본군이 아직도 물러나지 않고 무기 없는 민족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부분이 전지적 작가시점이 아닌 강주사의 시점이었다면, 이 부분은 염통 썩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손톱 긁힌 것만 아파하는 근시적 인물에 대한 풍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하게도 풍자가 아니다. 그것은 38선 분할점령이라는 민족적 불행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일본 패잔병의 횡포만 아프게 여기는, 그리하여 그것을 ‘무기 없는 민족’이라고 소설의 표제로까지 삼는 한 작가의 현실인식이라는 사실이 시대를 건너 우리를 슬프게 한다.

2-2. 지식인의 찬탁과 ?해방전후?
김송의 『武器 없는 民族』이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신탁통치를 극렬하게 반대하여 노동자=찬탁이라는 통념적 등식을 깨고 있는 소설인 점에 비하여 이태준의 ?해방전후?는 그와 상대되는 입장에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반탁의 의미를 부정하고 있는 점이 관심을 끈다. 처음 발표되던 무렵 “사상적 철학적 기조가 심히 천박한” 작품으로 폄하되기도 했고, “주인공 현이 전형적 인물도 아니고 계급적 초점을 향해 사건이 집중되어 있지도 않은데, 이 작품이 어째서 좌익 문학가 그룹에게 그토록 환영을 받았는지 다소 의아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했던 ?해방전후?는 월북작가 해금 조치 이후 이태준에 대한 관심의 증폭과 함께 주목받는 소설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전흥남은 정한숙의 지적에 대해서 “이 작품은 순수문학자의 전향과정을 그리고 있는 점에서 좌익진영 문학단체의 홍보용으로, 혹은 <문건>의 문화통일전선의 내용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이 해방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된 것은 <문건>의 전략적 측면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 부연하기도 했다.
?해방전후?는 근래 우리나라 학계에서 “<달밤>의 복고주의와 관념주의로부터 브르조아 민주주의의 혁명적 세계관에로의 1차 전향이란 내면풍경 속에서 해방공간의 콘텍스트를 힘으로 하여 생산된 작품”, “해방 이전의 자신의 삶을 처세주의로 반성하는 가운데 행동 컴플렉스를 짙게 느껴온 한 작가가 그 극복이나 해소의 방안을 좌익단체에의 가맹에서 찾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 소설”, “해방 전의 사회현실과 해방 후의 사회현실 속에서 김직원과 현이라는 두 인물이 대응하고 있는 삶의 태도를 그리고 있다. 특히 현이라는 한 소설가가 일제말에 받은 여러 가지 억압과 탄압을 비롯하여 해방 후에 조선문학건설본부에 가입하여 스스로 진보적인 작가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해방 직후 좌익문단의 조직과 건설과정을 통해 현의 <문건> 가입이 세계관의 변모과정에 따른 필연적인 선택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등등의 견해로 요약되면서 그 작품의 소설미학적, 문단사적, 정치적 의미들이 차근차근 정리되고 있다.

2-2-1. 김직원의 역설적 기능
이 소설에는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수기’라는 말은, 자전적임을 드러내면서 고백적 내용임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고 글의 리얼리티를 보조적으로 돕는 구실을 수행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수기라는 말은 이 글이 소설(거짓말)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달라는 표현이다. 소설 「해방전후」속에는 작가 이태준의 해방을 전후한 실제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연구자들은 밝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의 김직원이라는 인물이 가공적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연구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 반드시 감추어야 할 진실을 위해서 위장고백을 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더러 있는데, 작가 이태준도 이 소설에서 사실인 것처럼 위장하여 반드시 감추고 싶은 거짓말이 하나 있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거짓말, 그것은 곧 소설적 진실이기도 하다. 김직원과 관계되는 내용들이 바로 그 감추고 싶은 거짓말이다. ‘수기’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함의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볼 때, “한 작가의 수기’라는 이 소설의 부제는 김직원이라는 인물의 이 소설에서의 비중을 실감하게 하는 어법이다.
이 소설은 그 표제처럼 해방을 전후해서 한 작가가 겪어낸 일들을 진술하고 있다. 일제 말기, 요시찰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툭하면 파출소에 불려가 온갖 눈치를 살피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지내던 소설가 현은 철도역에서 팔십리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강원도 어느 한적한 산읍을 택하여 피신을 한다. 그곳에서 한가하게 낚시질이나 하면서 세월을 버텨볼 요량이었지만, 그마저 제대로 못할 정도로 현은 그곳에서도 징용에 끌려갈지도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김직원이라는 노인과 가까이 지내다가 해방을 맞게 되는 것이 이 소설 전반부의 기본 줄거리다. 김직원은 조선이 망한 이후 한 번도 자의로는 총독부가 생긴 서울에 오기를 피할 만큼 반일감정이 강직한 노인이다. 창씨를 안 하고 견디는 것은 물론, 삼일독립운동으로 감옥에 끌려갔다가 감옥에서 나오는 날부터 다시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다. 현은 이 소설의 전반부에서 그 김직원과 한두 번 만남만으로도 서로 간담을 비추는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간절하게 조선 독립의 날을 기다린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해방 전에 소극적 처세로 일관한 소설가 현의 고백적 변명적 자기합리화의 사연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지사적 우국적 강직한 태도가 귀하게 느껴져서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을 뿐, 김직원은 소설 전반부의 주조를 이루는 현의 그 고백적 변명적 자기합리화에 특별히 도움되는 인물이 아니다. 김직원은 해방 후의 그의 역할을 위해서 전반부에 예비되어 있는 인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설 전반부에 집요하게 드러나는 현의 고백적 변명적 자기합리화는 이 소설의 소주제가 아니라 소설 후반부의 중심 갈등을 위해 설정된 밑그림이라는 것을 김직원이라는 인물의 역할이 암시하고 있다.
김직원이 머리 깎기를 거절한 이유로 끌려가서 소식이 없는 며칠 동안에 해방이 되고, 현은 김직원의 소식을 모르는 채 상경하게 된다. 해방 이후의 갈등을 그린 이 소설의 후반부 결말 부분에서 신탁통치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는 시점에 김직원이 예고도 없이 현에게 찾아오는데, 현은 그 직전에 반탁 강연도 했고, 그 내용이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었다. 자신의 경솔한 판단을 뉘우치고 있던 현은 김직원과 더불어 신탁통치에 관한 문제를 중심으로 두어 차례 논쟁을 겪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설득하려 노력하지만 생각의 차이가 영 좁혀지지 않는다. 다시는 서울에 오지 않겠다면서 김직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흰 두루마기에 검정 갓을 쓴 김직원의 뒷모습이 멀리 가물거리면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의 이러한 파멸적 결말을 위하여 김직원은 처음부터 요긴하게 예비되어 있던 인물이었다. 해방 전에 주인공 현과 “서로 간담을 비추는 사이”가 되어 고통스럽던 한 시절을 서로 위로하고 서로 존경하면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김직원은, 해방 후 주인공 현의 진보적 태도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구제불능의 완고한 조선인인 채로 남기 위하여, 주인공 현의 적극적 세계관과 삼상회담 지지의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하여 설정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정신적으로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현은 신탁통치 문제에 대해서만은 그와 견해를 같이할 수가 없었다.

2-2-2. 삼상회담 지지를 위한 역설적 방법들
?해방전후?의 소설미학적, 문단사적, 정치적 의미들이 논의, 정리되는 과정에서 이 소설의 신탁통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글은 거의 없다. ?해방전후?에 관하여 언급된 많은 글들이 이 소설의 신탁통치 문제를 외면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경우에도 김직원과 현으로 대립된 보수와 진보의 세계관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한 방편쯤으로 여기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당시의 삼상회담을 지지하는 것이 아직도 반국가적 입장으로 여겨지는 여건 속에서 이태준을 보호하고자 하는 온정적 입장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고, 더러는 이 소설에서 속내를 가급적 은폐하고 있는 이태준의 작가적 태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태준에 대한 온정적 입장 때문이라면 몰라도, 속내를 가능한 한 감추는 것이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서사 장르의 기본 입장임을 감안할 때, ?해방전후?에 유지되어 있는 이태준의 그러한 작가적 태도 자체가 은폐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해방전후?라는 소설이 당시의 신탁통치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글임을 밝히기 위해서 이 글은 ?해방전후? 전편을 통해서 가능한 한 속내를 감추는 이태준의 작가적 태도를 우선 점검해 보기로 한다.
(A) “현공, 그간 많이 변하셨다구요?” / “제가요?” / “소문이 많이 변하셨다구들” / “글세요......” 현은 약간 우울했다. 현은 벌써 이런 경험이 한두 번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방 전에는 막역한 지기(知己)여서 일조유사한 때는 물을 것도 없이 동지일 것 같던 사람들이 해방 후, 특히 정치적 동향이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이 뚜렷하게 갈리면서부터는, 말 한두 마디에 벌써 딴사람처럼 서로 경원(敬遠)이 생기고 그것이 대뜸 우정에까지 거리감을 자아내는 것을 이미 누차 맛보는 것이었다. (중략) “그런데 어쩌자구 우리 현공은 공산당으로 가셨소?” / “제가 공산당으로 갔다고들 그럽니까?” / “자자합니다. 현공이 아모래도 이용당허는 거라구” / “직원님께서도 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현공이 자진해 변했을진 몰라, 그래두 남헌테 넘어갈 양반 아닌 건 난 알지요” / “감사헙니다. 또 변했단 것도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변했느니, 안 변했느니 하리만치 해방 전에 내가 제법 무슨 뚜렷한 태도를 가졌던 것도 아니구요, 원인은 해방 전엔 내 친구가 대부분이 소극적인 처세가들인 때문입니다. 나는 해방 후에도 의 연히 처세만 하고 일하지 않는 덴 반댑니다.” / “해방 후라고 사람의 도리야 어디 가겠 소? 군자는 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입넨다.“

(B) 김직원은 그 이튿날도 현을 찾아왔고 현도 그 다음날은 그의 숙소로 찾아갔다. 현이 찾아간 날은, / ”어째 당신넨 탁치 받기를 즐기시오?” 하였다. / “즐기는 게 아닙니다.” / “그 러면 즐겁지 않은 것도 임정에서 반대를 허니 임정에서 허는 건 덮어놓고 반대하기 위해서 나중엔 탁치꺼지를 지지헌단 말이지요?” / “직원님께서도 상당히 과격하십니다그려” / “아니, 다 산 목숨이 그러면 삼국 외상헌테 매수돼서 탁치 지지에 잠자코 끌려가야 옳소?” / “건 좀 과허신 말씀이구, 저는 그럼, 장래가 많어서 무엇에 팔려서 삼상회담을 지지허는 걸로 보십니까?” / 그 말에는 대답은 없으나 김직원은 현의 태도에 그저 못마땅한 눈치만은 노골화하면서 있었다.(300-301면)

인용글 (B)에서 먼저 유념할 부분은 김직원과 현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용어 사용상의 차이점이다. 김직원이 사용하는 ‘탁치’라는 용어 대신 현은 ‘삼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탁치’라는 말이, 삼상회담의 결과를 ‘신탁통치’로 왜곡시켜 반탁운동을 주도해온 동아일보적 용어라는 사실을 주인공 현은 새삼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武器 없는 民族』의 주인공 신행이 신탁통치 반대를 열렬하게 주장하고 있음에 비하여 ?해방전후?의 주인공 현은 위 인용글(B)에서처럼 마지못한 경우 반문하는 형식으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삼상회담을 지지하는 속뜻을 가능한 한 입 밖에 꺼내려 하지 않는다. 공산당에 가까이 한다는 주변의 비판에 대해서도 현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태도로 대할 뿐, 자신이 공산당에 가까이 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거나 시인하는 일이 없다. 주인공 현의 그러한 자기 은폐적 태도 때문에 이 소설에서 거론되는 신탁통치에 관한 문제가 이 소설의 핵심 주제가 아닌, 현의 진보적 세계관을 드러내기 위한 한 방편인 것처럼 여겨지는 오해를 유발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지 아니하고 최대한 은폐시킨 채 상대방으로 하여금 반대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자기 생각을 더 강하게 부각시키는 이러한 역설적 방법이 ?해방전후?에서 이태준이 즐겨 사용한 소설적 장치였음을 우리는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해방 이틀 후 서둘러 서울에 온 현에게는 해방 이틀만에 벌써부터 설치며 덤비는 좌익작가들이 불순하고 경망해 보인다. “벌써부터 기치를 올리고 부서를 짜고 덤비는 축들이 대부분 전날 좌익 작가들임을 알게 될 때, 문단 그 사회보다도 나라 전체에 좌익이 발호할 수 있는 때요, 좌익이 제멋대로 발호하는 날은, 민족상쟁 자멸의 파탄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위험성이 있었다.”(288면)고 판단한 현은 해방 전처럼 소극적으로 처세만 할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을 타개해야 되겠다 싶은 생각으로 ‘조선문화건설중앙위원회’란 데를 찾아간다. 그곳에서는 마침 좌익 작가나 평론가들이 중심이 되어 선언문을 수정하고 있었다. 현은 그 좌익 작가와 평론가들을 “든든히 경계하면서” 그 선언문을 몇 차례나 읽어본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 혹시라도 위선적인 데가 없나 엿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적이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들에게 이만침 조선 사정에 진실한 정신적 준비가 있었던가?’ 현은 그들의 태도와 주장에 알고 보니 한 군데도 이의(異意)를 품을 데가 없었다. (중략) ‘조선문화의 해방, 조선문화의 건설, 문화전선의 통일’, 이것이 전진 구호였던 것이다. (중략) 현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고 즐겨 그 선언에 서명을 같이 하였다.(289면)

이는 현이 좌익 작가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에 대해서 지니고 있던 종전의 불신과 혐오와 경계심을 극복하고 있는 첫 단계다. 현의 이러한 태도는 『武器 없는 民族』에서 “조선사람은 오천년 문화를 갖인 민족이야. 그렇게 역사는 깊은 민족이 왜 공산주의 같은 외국사상을 생채로 삼킨단 말이냐? 초목(草木)은 흙에서 나고 고기는 물 속에서만 사는 것처럼 우리 민족은 조선의 고유한 문화를 버리고는 살 수 없어!”라고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동료에게 윽박지르던 주인공 신행의 단순, 소박한 태도를 새삼 연상시킨다. 주인공이 지니고 있던 좌익 콤플렉스를 역설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현의 이러한 태도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나 더 지속된다.
좌익 대중단체 주최의 대규모 데모가 있던 날, 부르는 노래도 赤旗歌요 깃발도 붉은 기뿐인데, 현이 소속되어 있는 ‘문협’의 책임자 중의 하나가 묶어 둔 연합국기들 중에서 소련기만을 끌러 그 데모대 위로 뿌린다. 거리가 온통 시뻘개진다. ‘문협’의 책임자 중의 하나인 현은 동료들의 따돌림을 받으면서 그것(소련기를 데모대 위로 뿌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다. 또 ‘조선인민공화국 절대지지’라고 쓴 현수막이 ‘문협’ 회관에 드리워진 사건에 대해서도(한낱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음이 곧바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 현수막을 부랴부랴 거둬들이며 현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다.
赤旗 살포사건이든 현수막 사건이든 좌익콤플렉스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이러한 태도는 좌익이나 공산주의나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다. 반 좌익적으로 보이는 현의 행동들은 사실은 좌익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속내가 은폐되어 있는 현의 반 좌익적 행동들은 현이 이미 좌익화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좌익 콤플렉스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이런 역설적 태도들은 이 소설의 핵심 주제인 삼상회담 지지를 위해서도 역설적으로 기여한다. 극렬한 좌익들이 삼상회담을 지지한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식이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좌익이나 공산주의에 대해서 경계심과 혐오감을 지니고 있는, 그리고 반 좌익적인 행동에 과감히 앞서는 사람도 삼상회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노동자 아닌 소심했던 지식인인 점, 현이 처음 신탁통치 소식을 듣고 흥분하여 반탁 강연에 나섰던 일, 마음 속으로 아끼고 존경하던 김직원에게 현이 깊은 배반감을 느끼게 하는 것, 애당초 현이 공산주의나 좌익에 대하여 경계심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고, 반 좌익적으로 보이는 행동에 과감히 앞섰던 것 등등의 역설적 방법들이 가능한 한 속내를 감추는 이태준의 작가적 태도에 맞물리어 그것들은 모두 삼상회담 지지라는 이 소설의 주제 부각에 유기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3. 맺음말, 선동적 소설과 소설적 선동


점령군 철수, 삼팔선 해제, 조선의 완전독립 등을 목표로 삼았던 김구의 반외세적 반탁운동이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목표로 삼은 이승만의 친미적 반탁운동에 참담하게 이용당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탁통치를 소재로 삼아 씌어진 해방기의 소설들은 그 뜻하는 바가 찬탁이든 반탁이든, 김구와 이승만의 동상이몽 속에서 이승만에게 이용당한 김구의 좌절을새삼 환기시킨다.
이승만적 반탁을 내놓고 지지하는 소설은 없지만, 『武器 없는 民族』의 경우, 이승만적 입장에 바탕을 두고 김구적 반탁을 내세워 이용하고 있는 혐의가 짙다. 2-1에서 살펴본 바처럼 『武器 없는 民族』이 反蘇, 反共을 강조하기 위한 『동아일보』의 친미적 왜곡보도를 덧칠하여 반탁운동의 중요한 기폭제로 활용하고 있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리고 김구의 토지국유화정책이 훗날 김구를 빨갱이로, 국제 테러리스트로 몰아세우던 한민당과『동아일보』의 음험한 선동의 근거가 되었음을 상기할 때 더욱 그렇다.
이승만적 반탁을 외면하고 김구적 반탁만을 대상으로 삼아 그 감상적 수구적 그리고 비객관적 완고함을 집중 공격하고 있는 ?해방전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추구한 박헌영의 8월 테제에 근거를 두고 그 시대를 바라보고 있거니와, 당시 사상적 전향의 준비에 급급했던 이태준의 작가적 시대지평을 안타깝게 확인하게도 한다. 신탁통치에 관한 우익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武器 없는 民族』이 소설미학적 입장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선동적으로 반탁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단순 소박한 소설임에 비하여, 좌익적 입장을 대변하는 ?해방전후?는 인물의 설정이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방법과 그 효과 면에 있어서 용의주도하게 소설미학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자가 선동적 소설이라면 후자는 소설적 선동인 셈이다.
?해방전후?가 해방을 전후해서 한 작가가 겪는 사상적 전향과정을 그린 소설, 해방 전의 소극적 처세를 뉘우치고 적극적 세계관을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는 근래의 연구자들의 견해는 물론 충분한 타당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글은 ?해방전후?라는 소설이 이태준의 그런 사상적 전향 과정에서, 은폐와 역설적 장치들을 통하여 삼상회담 지지에 초점이 형성되어 있는 소설임을 덧붙여 강조하고자 한다.

■ 필자 : 우석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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