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이후 나는 정양 선생님과 이런저런 인연을 쌓으며 살아왔다. 그러니까 유신시절과 신군부 집권기의 개 같은 세월, 그리고 그 이후의 가열찬 민주화 투쟁의 시기를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친구로 함께 절망하고, 분노하고, 기뻐하면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도 알 만큼은 알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느닷없이 내게 시선집 『눈 내리는 마을』의 발문을 부탁하셨다. 그리고는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먼저 급하다는 말씀부터 하시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정양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 본 시 「내 살던 뒤안에」, 「모과나무는」, 「병후」 등으로부터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날 나는 시라는 것이 이렇게 충격적이고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시가 이렇게 사람을 꼼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남은 70년대 내내 정양 선생은 시를 쓰지 않았다.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후에도 정양 선생은 이른바 잘 나가는 인기 시인이 되지 못했고, 그 흔한 문학상 한번 타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양 선생의 시가 최고 수준의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을 해본 적이 전혀 없다. 정양 선생의 시만큼 충격적인 감동으로 다가오는 시를 만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글은 내가 받은 감동을 다른 많은 사람과도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의 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진작부터 정양 선생님 시집의 발문을 쓰고 싶은 가당찮은 욕심을 갖고 있었다. 정양 선생님은 아마 나의 이런 분에 넘치는 욕심을 진작부터 환히 알고 계셨으리라. 그리고는 그동안 쓴 시 중에서 알짜배기들만을 골라 놓은 이 시집의 발문을 맡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분명히 정양 선생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아는 분 같았는데, 글을 시작하자마자 도무지 아는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정양 선생님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아는 것이 없다. 도대체 그런 것들을 물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오히려 다른 사람으로부터 우연찮게 얻어들은 것들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크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사에 대해 잘 아는 갓이 한 사람의 시를 잘 이해하는데 꼭 도움이 될 것인가도 의문이다. 지나치게 개인사에 집착한 나머지 편협하게 해석할 소지 또한 없다고 아니 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 동네 입구에는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백 년도 넘은 그 느티나무 밑에는 또 그만한 나이들을 먹었음직한 크고 널찍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여름철이면 그곳은 느티나무가 만들어주는 크고 시원한 그늘로 인하여 사람들의 좋은 휴식처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오고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세상살이 걱정도 하고, 장기도 두고, 더러는 낮잠도 잔다. 여름 한 철 큰 느티나무가 만들어주는 크고 시원한 그늘은 참으로 넉넉하고 그윽하다.

  나는 정양 선생을 볼 때마다 그 큰 느티나무를 떠올린다. 정양 선생 그늘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집에도 늘 제자들이 찾아오고, 연구실에도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정양 선생 그늘에 와서 쉬고 싶어한다. 세상일 뜻대로 안 될 때, 지쳐서 그만 쉬고 싶을 때, 쓰던 글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정양 선생을 찾는다. 사람이 끓다보니 사모님 고생이 여간이 아니다. 또 사람이 끓다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더러 못 볼 꼴을 보기도 하고,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냥 다 사람 사는 일이겠거니 하고 웃어넘긴다. 정양 선생만큼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을 나는 본 일이 없다. 그러니 나도 그 그늘에 가서 쉬고 싶고, 위로 받고 싶어지는가보다.

 그런데 정양 선생의 가슴 속은 온통 상처투성이이다. 그야말로 타고, 썩고, 문드러지고, 녹슬고, 괴어오르는 일들로 인하여 숯덩이가 돼버린 가슴을 안고 산다. 그러기에 그 품안이 깊고 그윽하다. 마치 우리 동네 입구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가 썩어 문드러진 몸통을 가졌기에 더 넓고 깊은 그늘을 만드는 것처럼, 그리고 그 썩어 문드러진 텅 빈 몸통 속에다 오히려 오갈 데 없는 새들을 또 키우는 것처럼. 요컨대, 사람들로 하여금 편히 쉬게 하는 정양 시인의 크고 시원한 그늘은 세상사의 온갖 신산을 다 겪고 난 뒤의 너그러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